주현미 - 사랑 (김하정.1968)

= 노래 이야기 =

한 번쯤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을 보고 손이 먼저 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실 거예요. 책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표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제목을 잘 짓는 것이 베스트셀러의 성공 비결로 꼽히는데요.  

그래서, 책 제목에도 유행이 있어서 몇 년 전까지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형’인 제목들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작가를 비롯해서 출판사 기획자들도 어떡하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목을 지을까를 정말 많이 고민하는데요. 

요즘의 이런 트렌드와 비교해볼 때, 지나치게 정직하고, 지나치게 단순하고 지나치게 직설적인 제목 하나로 사랑 받았던 우리나라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은 바로 춘원 이광수 작가님의 ‘사랑’인데요. 

얄미운 사랑도 아니고, 무정한 사랑도 아니고, 못 잊을 사랑도 아니고, 그 어떤 수식어 없이 단 두 글자,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소설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1형식을 만들면서 사랑 받았습니다.

‘사랑’은 1937년에 춘원 이광수 작가님이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왜경에 검거되어 반년 간 옥고를 치르고 병보석으로 출감한 후 병석에서 쓴 작품인데요. 다른 작품들은 신문 연재가 되었지만, 이 작품은 신문 연재가 되지 않은 최초의 장편소설로 알려져있고요. 

1939년에 발표돼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훗날 영화로도 두 차례 만들어졌습니다. 먼저, 1957년 이강천 감독님이 만든 ‘사랑’에 이어서  또 다른 영화 "사랑"은 1968년, 강대진 감독님이 문희, 신영균, 김지미, 이순재씨 등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완성했고요. 

그해 2월 국도극장에서 개봉해서 당시 9만 5천명 이상의 관객이 들면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가 역시 영화를 능가하는 인기를 모았는데요. 그 곡이 바로 김하정 선배님의 데뷔곡이자 영화 주제가인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
  젊음의 꽃밭에는 찬 비만 내려
  운명이라 달래보는 백의의 천사
  행여나 오실까 아, 못 다 한 사랑
  그늘에서 곱게 피다 지리라

​  그리움을 꿈에 실은 밤이 지나면
  또 다시 맞아야 할 서러운 아침
  얼어붙은 북녘 하늘 눈 덮인 옛날
  언제나 만날까 아, 영원한 사랑
  기다리는 여인 울지 않으리"

​
영화 ’사랑‘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황문평 선생님이 곡을 쓰고, 유한철 선생님이 가사를 쓴 주제가 ’사랑‘은 원래 ’패티 김‘ 선배님을 물망에 올려놓은 곡이었습니다. 황문평 선생님이 주제가를 만든 후에 영화사측과 상의한 결과, ’패티 김‘ 선배님이 이 노래를 부를 계획이었는데요. 

때마침 패티김 선배님이 해외공연으로 귀국이 늦어지면서 녹음은 불발되었고요. 영화 음악 녹음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영화사에서는 독촉이 심해지자, 다급한 마음에 여러 가수들을 물색하던 황문평 선생님은 한 가수의 얼굴을 떠올리게 됐는데요. 그 주인공이 바로 김하정 선배님이었습니다. 

당시 김하정 선배님은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콩쿨대회에서 특등으로 뽑혀서 광주 MBC의 전속 가수로 있었는데요. 세간에 패티김 선배님과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소문이 났는데, 그 사실을 기억해낸 황문평 선생님이 김하정 선배님에게 곡을 주었고요. 

당시 스무살의 김하정 선배님이 노래한 ’사랑‘은 가장 성공적인 데뷔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김하정 선배님은 이 노래 한 곡으로 ’패티 김보다 더 달콤한 목소리‘라는 칭찬을 들으며 단숨에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이 ’소유‘하는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죠. 하지만,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을 소유하는 것은 서로가 불편하고 힘들어지는 관계가 되고요. 오히려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생각과 방식과 판단까지도 이해하고 더불어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학창 시절 어렴풋이 읽었던 ’사랑‘을 다시 한번 읽으면 예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더 소중해진 사랑의 철학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끝으로 소설 ’사랑‘의 소개글을 함께 실어봅니다.

인생을 암흑暗黑이라 하면, 사랑은 유일한 광명光明이다.
인생을 빙세계氷世界라 하면, 사람은 유일한 난기暖氣다.
인생을 악취惡臭라 하면, 사랑은 유일한 향기香氣다. 
그런데 이 정 떨어질 만한 인생에게도 아직 사랑은 멸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