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나는 가야지 (문정숙.1959)

 

= 노래 이야기 =

우리나라 역대 여배우들 중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 배우를 손꼽는다면, 아마도 1960년대에 각광받았던 문정숙 선배님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영화배우들 중에서도 노래실력이 뛰어나서 본인이 직접 출연한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실력을 선보이면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주인공이 바로 문정숙 선배님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52년에 신상옥 감독님의 영화 ‘악야’로 데뷔한 문정숙 선배님은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요. 1960년대에 가장 뛰어난 성격파 배우로 섬세한 표정과 심리적인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단지 미모로만 승부하는 여배우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특히, 대다수 여배우들이 착하고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였다면, 문정숙 선배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팜므파탈'연기를 선보이면서 '복수의 페르소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요. 청순하고 순애보적인 모습부터 한국적이고 자애로운 모습, 팜므파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폭넓은 연기력을 펼치며 영화계의 보배와 같은 존재로 사랑받았고, 그만큼 수많은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여러 감독님들과 작업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이만희 감독님과는 많은 영화를 함께 찍으면서 연인이자 영혼의 동반자로 발전했고요. 이만희 감독님의 영화 '만추'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주제가도 직접 불렀지요. 영화 ‘만추’에서 복역 중에 잠시 외출한 죄수의 애틋한 사랑과 심리를 리얼하게 표현하면서 문정숙 선배님은 1960년대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요. 그야말로 미모와 연기력, 그리고 노래실력까지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영화 '꿈은 사라지고'에서는 남녀 주인공이었던 최무룡 선배님과 문정숙 선배님이 각각 영화주제가를 한 곡씩 불렀는데요. 최무룡 선배님의 '꿈은 사라지고'와 문정숙 선배님의 '나는 가야지'는 지금도 가요 사에서 명곡으로 꼽히는 노래들입니다. 영화 '꿈은 사라지고'는 김석야 선생님이 집필한 KBS의 인기 라디오 드라마였고,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59년에 개봉한 영화 '꿈은 사라지고'는 당시 10만 관객을 모을 만큼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었습니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주제가 '꿈은 사라지고'는 안다성 선배님이 노래했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최무룡 선배님이 그 곡을 노래했고, 여주인공인 문정숙 선배님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나는 가야지'인데요. 두 곡 모두 손석우 선생님이 작곡한 명곡으로 '나는 가야지'는 서정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고품격 가요로 손꼽히는 노래입니다. 


"겨울이 가고 따뜻한 해가 웃으며 떠오면
 꽃은 또 피고 아양 떠는데 노래를 잊은 이 마음
 비가 개이고 산들바람이 정답게 또 불면
 새는 즐거이 짝을 찾는데 노래를 잊은 이 마음

 아름다운 꿈만을 가슴 깊이 안고서
 외로이 외로이 저 멀리 나는 가야지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린 쓰라린 이 마음
 다시 못 오는 머나 먼 길을 말 없이 나는 가야지

 아름다운 꿈만을 가슴 깊이 안고서
 외로이 외로이 저 멀리 나는 가야지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린 쓰라린 이 마음
 다시 못 오는 머나 먼 길을 말 없이 나는 가야지"


영화 '꿈은 사라지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영화로 남녀 주인공이 최초로 직접 주제가를 노래한 작품입니다. 유망했던 권투선수가 애인의 아픈 비밀을 알게 되면서, 배신감에 빠져 권투마저 포기하고 방황하다가 다시 주위사람들의 격려 속에 재기에 성공한다는 내용으로 밝고 쾌활한 오락성과 애잔한 감성을 모두 담아낸 수작이었고요. 영화 주제가까지 명곡으로 손꼽히면서 영화 팬과 가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지요.

특히, '나는 가야지'는 때론 담담하게, 때론 처연하게, 그리고 때론 애틋하게, 마치 연기하듯이 감정을 실어 드라마틱한 가창력으로 노래하는 문정숙 선배님의 매력이 가득한 곡인데요. 한 곡의 노래 속에 한 편의 영화를 모두 담아냈다고 해도 무방할 거예요. 그래서 이 노래는 수려한 멜로디와 우수에 찬 느낌으로 수많은 리메이크가 만들어졌습니다. 함께 영화를 찍은 최무룡 선배님을 필두로 이주랑, 양희은, 홍민, 패티김, 남진, 나훈아, 블루벨스, 문주란, 정훈희, 숙자매, 남화용, 최진희, 한경애, 김수희, 김란영 등등 정말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노래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애창되고 있지요.

노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얼마나 호소력 있게 다가가느냐겠지요. 그런 점에서 타고난 영화배우이면서도 탁월한 가수였던 문정숙 선배님의 애수어린 모습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분들에게 이 노래가 가슴에 감동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반가운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