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한국을 말하다] 저절로 드러나는 성품

내각 후보자 꿰뚫는 '송곳 검증' 필요

▲ 해(日) 아래에서 염색한 실(絲)을 머리(頁)를 숙여 바라보면 훤히 나타난다(顯). /그림=소헌

기축옥사(1589년)와 인조반정(1623년) 등 당파의 정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 불어닥친 임진왜란(1592년)과 정묘호란(1627년)은 그야말로 조선 사회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붙였다. 관료들에게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고, 백성은 지치고 쇠약해졌다.

선조·광해·인조 등 조선시대를 통틀어 악명이 높았던 군주 아래에서 '오리 이원익'은 군사업무의 최고 직책인 도체찰사를 네 번, 국정을 총괄하는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지냈다. 그는 남인南人이었지만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국정의 중심에서 합리적으로 처신하였다. 그가 받은 시호 '문충文忠'은 당적을 초월하여 존숭하는 칭호다. 사실 그의 업적보다 더 크고 빛나는 것은 청렴한 삶이었다.

“절대로 옳지 못한 재물을 모으지 말고 불인不仁한 부富를 경영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자손들에게 청빈한 삶을 강조했다. 40여년간 조선 최고의 자리에 앉았던 그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였다. 그곳에서 그는 농사짓고 돗자리를 만들어 팔며 겨우 생활했다. “그의 청백함은 고금에도 없는 일이다.” 이원익의 삶에 감복한 인조는 궤장_杖을 내리고, 다섯 칸짜리 관감당(觀感堂.보고 느끼는 집)을 지어 하사했다.

도덕경 제15장 顯德(현덕-저절로 드러나는 성품)에서는 도를 터득한 선비의 성품을 설명한다. 사람의 성품이 고요할 때는 본성이 살아있지만, 권력욕이나 물욕이 생기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우리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난사람'이나 '든사람'보다 '된사람'을 찾는 까닭이다.

예로부터 도를 터득한 선비는 미묘하고 현묘한 도리에 통하여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알기 어려우니 억지로나마 그 모습을 형용해 본다. 신중한 품새는 겨울에 강을 건너는 듯하고, 근신하는 품새는 사방에서 이웃이 엿보는 듯하고, 엄숙한 몸가짐은 자신을 낮추는 손님인 듯하고, 흩어져 어울리는 품새는 봄에 얼음이 녹는 듯하고, 돈독한 품새는 켜거나 짜개지 않은 나무 같고, 넓게 트인 품새는 깊은 골짜기 같고, 혼연한 품새는 세상의 티끌이 섞인 혼탁한 물과 같다.-욕심이 없고 깨끗한 품새는 깊은 바다와 같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나부끼는 품새는 바람과 같다. 어느 누가 혼탁한 것을 고요한 마음으로 서서히 맑게 할 수가 있겠는가? 어느 누가 편안히 자신을 지키며 세상으로 나아갈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무의의 도를 지닌 사람은 사사로이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채우려 하지 않으니 능히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이룰 수 있다. (古之善爲士(道)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客 渙兮若_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澹兮其若海 _兮若無止.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 )而新成. 「道德經」 第15章-顯德) 

顯현 [나타나다 / 귀하다]

①顯(현)의 옛 글자는 _(현)이다. 통(曰) 안에 실(絲사)을 넣고 염색하는 모양새다. 또는 햇볕(日)에 염색한 실타래(絲)를 널어 말리는 중이다. ②시간이 지나고 염색(絲)이 잘 되었는지 머리(頁혈)를 숙여 바라본다. 해(日)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저절로 드러난다. 숨길 수가 없다.

'인위적인 할당이나 안배가 아닌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인물'을 뽑겠다는 인사원칙을 내세운 尹 당선자의 내각구성 현황을 들여다봤다. 서영남(서울대·영남·남자)으로 불리는 그들의 재산은 평균 39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에서 '돈이 능력'이 되는 터라 흉이 되지는 않겠지만, 재산형성 과정과 이해를 위하여 주머니 속에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는 송곳 같은 검증이 필요하다(囊中之錐낭중지추). 혹시 성품을 살피는 인사청문회는 없을까?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출처: ©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