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한국을 말하다] 꾸밈없는 바탕으로

보리 서말로도 행복한 가정 꾸렸던 그때로 돌아가자

▲ 술( 수) 한 잔 곁들여야 제사상(享향) 인정이 두텁게(淳순) 된다. /그림=소헌

부끄러운 이야기라 선뜻 글의 서두序頭에 올리기가 어렵다. 1970년대에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몇 해 동안 '지룡이 하우스'에서 살았다. 地龍, 말이 '용'이지 '지렁이'를 이르는 말이다. 지렁이는 '열을 내리고 경련을 멈추게 하며 맥을 잘 통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 한의학韓醫學에서는 매우 귀한 약재로 쓴다. 마을에서는 빛이 거의 들지 않도록 시커멓게 두른 하우스를 치고 지렁이를 키우는 집들이 많았다.

한때는 그래도 우리 집이 '주름상자(자바라) TV'를 제일 먼저 들였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선친先親은 넓은 집을 다 정리하고 10평 남짓한 하우스를 지었고, 선비先妣를 비롯한 열 식구는 그곳에서 지냈다. 어느 날 무허가 건물이라고 철거하기 위해 온 이가 구멍이 송송 뚫린 지붕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나요?” 아버지가 답했다. “비가 오면 물이 떨어지고 해가 뜨면 빛이 들어오지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정부가 내세운 구호는 필자를 매우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8남매의 셋째로 어린 동생들을 줄줄이 몰고 집을 나서면 그렇게 눈치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친구 녀석들도 대개는 네댓 명 형제들이 있었으니까.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4.7명에 달했던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낮아졌다. 전쟁이나 체제 붕괴가 아니면 불가능하게 여기던 지표다. 유식하게 “데드크로스(dead cross)!”

還(환)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요, 淳(순)은 꾸밈이 없는 것이다. 도덕경 제19장 還淳(환순-꾸밈없는 바탕으로)은 본질을 잃은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알려 준다. 인간미를 되찾는 것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 그것을 회복하면 세상의 어지러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바탕(素.외면)을 드러내되 근본(樸.내면)을 지키는 일을 가리킨다.

성스럽게 여기는 권위를 끊고 지혜를 버리면 民人의 이득은 백배가 될 것이다. 인품이라는 감정을 끊고 의로움으로 치장한 도덕을 버리면 민인은 다시 효성스럽고 자애로울 것이다.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기교를 끊고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면 도적도 없어질 것이다. 서술한 세 가지는 버려야 할 것들로서 사람이 조작해서 꾸민 것이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민인이 올바른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바탕을 드러내고 근본을 품게 하면 사사로움은 없어지고 욕심은 줄어들 것이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索抱樸 少私寡慾. 「道德經」 第19章-還淳)

[순박하다 / 물을 적시다]

①淳(순)은 (수)와 享(향)이 모여 만든 글자다.

②亨(형통할 형)은 제사상( 생략형)에 음식을 올려 완성하는(了) 모습이다.

③享(누릴 향/제사 향)은 모양만을 따서 제사에 쓰는 그릇이나 쟁반을 뜻한다. 제사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장차 자식(子)의 삶을 형통하게 누릴 수 있게 복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④여기에 술( ) 한 잔이 빠질 수는 없다.

⑤淳朴(순박)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순수하며 인정이 두텁다는 뜻이며 淳樸(순박)으로도 쓴다.

“누구나 설치할 수 있지만 누구나 가입할 수 없다.”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소개팅앱'에 남성은 경제능력으로 여성은 외모로 판단하여 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근본이 사라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에 나타난 많은 변화 가운데 가장 염려스러운 분야가 있다. 젊은이들이 시집가고 장가들려면 일단은 만나야 하는데 어찌할꼬.

이제 정치인들이 많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혼인정책'이 화두가 될 것이다. '겉보리 서 말'만 가지고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 道를 회복하는 길이며 애국하는 길이다. “여보, 자식들이 못하면 우리라도 애국해야 하는 것 아니오?”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출처 :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