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한국을 말하다] 텅 비운 마음

관직에 오른 자, 재물 멀리하고 법·규정 준수를

▲ 저만치 호랑이( 호)인 줄 알았는데, 빈 언덕( .丘구)이니 이를 虛(허)라 한다. /그림=소헌

1948년 명동 시공관(국제극장)에서는 한국 최초로 오페라 <춘희>가 상연되었다. 오롯이 조선인이 기획하고 노래했으며 오케스트라도 조선인이 맡았다는 점이 모두를 들뜨게 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오직 그들(일본인)을 위해 존재했기에 극장 주변에는 게다짝 소리가 진동했다는데, 이제 그 소리는 텅 비게 되었다.

椿(춘)은 동백꽃이니 椿姬(원제-라 트라비아타)는 '동백 아가씨'라는 뜻으로 사회적 약자와 상류사회의 위선을 소재로 삼은 오페라다. 한 달 중 25일은 흰 동백꽃을, 5일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 밤마다 파리의 극장 특별석에 나타나는 사교계의 꽃인 창녀와 귀족 청년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소설이 원작이다.

웬만한 사람은 모두 알 만큼 유명한 대표곡이 있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부르는 이중창 '축배의 노래'다. “마시자 마시자. 넘치는 잔 속에 고운 꽃이 피어나네. 마시자. 잔과 함께라면 사랑은 좀 더 뜨거운 입맞춤을 얻으리라.” 가족음악회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서정적인 노래로 여겼었는데 실제 내용은 다분히 퇴폐적이다.

오케스트라(orchestra)는 관악기·타악기·현악기가 모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우리말로는 관현악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반주음악을 가리키는 '가라오케'를 만들었다. 空(から)과 오케스트라(オケ)의 합성어로서 '가짜 오케스트라'라는 뜻이다. 사실 그들은 큰 오류를 범했으니, '空'은 '비다·공허하다'는 뜻이지 '가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글자다. 空(공)은 虛(허)와 無(무)와 통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허空虛함을 말한다.

도덕경 제21장 虛心(허심-텅 비운 마음)에서는 비움이 지극해지면 도에 이른다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제14장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 도는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존재이기에 자체로 공허하다. 공간적으로 앞에서도 뒤에서도 볼 수 없고, 시간적으로 처음과 끝이 없는 우주로서 무궁하다.

큰 덕을 지닌 사람은 오직 道를 따라 행한다. 도의 실재(實在.본질적 존재)는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황홀하면서도 그 안에 형상이 있고, 황홀하면서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깊고 아득하며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기운(精靈)이 있다. 그 정령은 심히 진실하고 그 안에 신실함이 나타난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고 이로써 만물의 근원을 다스린다. 우리가 무엇으로 만물의 근원을 알 수가 있겠는가? 바로 이것(道)을 통해서 알 수 있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道德經」 第21章-虛心)

虛(_) 허 [비다 / 헛되다 / 공허하다]

① (언덕 구)는 양손으로 흙(土토)을 쌓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변형된 丘(구)는 언덕이나 무덤을 뜻한다. ②저쯤 떨어져 있는 것이 호랑이( 호)인 줄 알았는데, 가보니 빈 언덕( .丘구)이더라. ③호랑이( )를 잡기 위해 언덕( .丘)을 넘어 찾아갔다. 그렇지만 언덕 너머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虛허) 세상이었다. 비움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6월 1일 지방선거도 지나갔다. 나랏일을 하는 자가 태만한 마음이 생기면 비리를 저지르게 되니, 관직에 오른 자들은 마땅히 재물을 멀리하고 법과 규정에 합당한 몸가짐을 지녀야 한다. 淸白吏(청백리)는 청렴결백한 관리로서 민중의 삶을 위하여 헌신하는 공직자에게 붙여주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다. 목민에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 검소함이다.” 정약용 「목민심서」 중에서.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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