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마지막 소원

아내의 마지막 소원

자식은 부모한테 '못'이래요 부모가 죽을 때까지 녹슨 그곳을 빼지 않는 이유가 안 아파서가 아니라.. 아픔을 참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못 마저 빼버리면 자식의 흔적이 모두 지워질까봐..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국제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장사도 잘되어 조그만 점포도 사서 월세도 받다 보니 집안 살림은 나날이 나아져 그 일대에서는 재력가로 통할 만큼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자식들도 대학에, 결혼에, 집에다, 사업자금까지 다들 살만하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부모 몫이다 싶어 뒷바라질 했답니다.

하지만 아내가 폐암으로 수술비와 병원비로 가세는 기우는듯 했습니다.

끊임없이 들어가는 병원비가 무척 부담스러워지던 그때 병원으로 문병을 온 자식들 6개월간 한 두 번 고작 다녀간 며느리들은 온데간데 없고 아들 두 놈만 약속이라도 한 듯 찾아와 앉았습니다.

병아리 눈물만큼 앉았다 일어서 큰아들이 나가더니 작은 아들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노부부만 텅 빈 병실 앉았습니다.

서로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남편이나 아내나 섭섭하긴 매한가지지만 말이란 게 입에서 태어나 귀에서 죽어가는 아픔을 아는지라 차마 자식 험담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재산 축내지 말고 조용히 시골에다 모시자는 아들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야 이놈들아! 그러면 니 어미 그냥 죽으라는 거여 뭐여! 너네들 재산 상속 몫이 줄어들까봐 그런겨!"

"아버지 저희들도 생각해주셔야죠. 애들도 유학 간다.. 대학원 간다.. 시집간다.. 돈 들어갈 때가 한두 푼이 아니라고요"

"그만큼 갈키고 뒷바라지 했으면 됐지 니 어미 목숨하고 돈하고 바꿀 거여! 꼴 보기 싫다! 오지도 말아!"

지는 해를 닮은 부모와 중천에 뜬 해를 닮은 자식 사이엔 엇갈리는 마음만 확인한 시간이었든 것 같습니다.

"여보 아들들이 왜 왔데요 “

"아무것도 아녀"

외마디 답을 한 뒤 세상에 침묵은 다 끌어안고서 말이 없는 남편 철옹성 같은 남편이 산책을 하기 위해 병실을 비우는 시간 PM 8:00, PM 8:05분에 전화가 울립니다.

"엄마 나야"..

"영수 엄마 큰아들"..

"응 그려 울 아들 잘 지냈어"

"엄마! 아버지 설득해 시골에 가서 요양하세요. 요즘 자연에 가서 살아난 사람도 많테요."

부모 근황은 아랑곳없이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는 끊어버립니다. 10분 간격으로 작은 아들놈에게서 차례차례 같은 내용의 전화가 울렸고 끊어졌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간이침대에서 하루를 백 년같이 누워 등 돌려 자는 남편이 더 야위고 허리까지 굽어 보입니다.

아내는 더 이상 절망을 담아둘 데가 없어서인지 말을 건 냅니다

"여보 자요? 아니 뭐 필요한 것 있어요? 시킬 것 있으면 말해야 뭘 갖다드리죠."

"아니에요. 주무세여."

"그려 임자도 빨리 자."

밤새 까만 어둠을 몰아내고 하루를 뜸 들이며 새벽이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뿌리까지 타들어간 엄마는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사공 없는 나룻배 하나 띄어놓고서 밤새 휘저어 놓은 생각들을 말하려 아침 일찍 바람이 그네를 밀고 있는 놀이터에 나와 앉은 노부부.

“여보 나 이제 병원이 지긋지긋해요. 공기 좋은 시골에 가서 병을 고친 사람도 많테요. 여보 그리합시다. 내 마지막 소원이에요”

마음에는 없는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남편은 알고 있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리고 영감, 자식 놈들 말 너무 새겨듣지 말아요. 자식은 부모한테 “못”이래요. 부모가 죽을 때까지 녹슨 그 못을 빼지 않는 이유가 안 아파서가 아니라.. 아픔을 참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못마저 빼버리면 자식의 흔적이 모두 지워질까 봐.. 자식의 흘려진 눈물로 만들어진 게 부모 가슴 이래요"

그렇게 재산을 정리하여 두 아들놈에게 나누어주고 아내의 고향 근처에 조그만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이것저것 이삿짐 안에는 자식에 대한 섭섭함도 함께 와있는 것 같습니다.

명절에 다녀가는 자식 놈들 챙기려 까만 비닐봉지에 햇곡식 한아름 담아주는 게 '엄마의 아쉬움 가득 축축한 생이' 인걸 죽어도 모르는 게 자식이듯 말입니다.

만성신부전을 가진 노인 혼자 힘으로 긴 간병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이제는 자신조차 가누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들들은 이 집 팔아 요양원으로 가라는 말만 남긴 채 이사한 지 2년이 되어가도 바람이 길을 막아서인지 두어 세 번 다녀간 것이 전부입니다.

속살을 헤집는 바람 같은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진 딸이 외국에서 통역하는 직업을 관두고 주름살 가득한 슬픔을 매단 병든 부모 곁으로
날아와주었습니다.

방안 가득 간절함 하나 걸어두고서 외로움과 아픔들이 굴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기서 시집이나 가지 왜 왔어!”

반가움에 한 순간에 피어난 얼굴은 웃어도 마음은 죽상입니다.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병든 부모 옆에 있겠다는 딸이 만개하다 떨어진 꽃이 될까 낭떠러지에 매달린 부모라도 달가울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딸은 당연하듯 말합니다.

“엄마 아빠 걱정되었어..”

세월에 난간에 같이 물들고 같이 허물어져도 함께 하고픈 게 딸의 마음인가 봅니다.

나무는 가을을 곁에 두려 하지만 바람이 데려 가버린 세월 앞에 되감을 수 없는 병원비는 소소하게 나가더니 가지고 온 돈을 넘어섰고 부족한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해야 했지만 거동조차 힘든 부모를 두고선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말합니다.

영어회화가 능숙해 일반 회사에 취직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시시 때대로 간호해야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속이 빈 자존심은 플라스틱 공장의 시간 알바부터 청소일을 하며 병원비와 생활비로 덧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추려 할수록 더 커지는 초라함 앞에서도 아픈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딸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말하는 딸.

“내 삶이 없어도 후회하지 않아요 "

그렇게 극진히 아버지를 모셨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은 효녀 딸도 막지 못하나 봅니다.

결혼할 때 그저 구두 하나씩 사서 나눠 신고 물 떠놓고 올린 결혼식 지금껏 간직해온 남편의 구두를 신겨드리며 "영감! 내 인생이 거기 묻혀 있잖아요. 결혼할 때 신었던 거니까요. 저승 갈 때 편히 신고 가셔요. 나도 저승 갈 때 영감이 사 준 신발 신고 가리다."

그렇게 편안하게 임종을 마친 것이 딸에겐 가장 큰 위로라며.. 그렇지만 올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적십니다.

이제 홀로 남은 어머니가 안 아프고 오래 사시는 게 마지막 소원인 딸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 보니 빨간 차압 딱지가 몇 안 되는 세간살이에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큰아버지 보증을 서준 게 화근이 된 것입니다.

온몸에 희뿌연 절망이 몰려드는 딸은 그 집을 고스란히 비워주고선 엄마를 모시고 갈 때가 없었습니다.

오빠들도 힘들다며 일백만 원을 보내준 것이 전부이고요

멀리 충북 쪽에 아는 지인이 하는 요양병원에 허드랫 일을 하면서 엄마랑 거처할 숙소가 있어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다 일 년을 못 넘기고 외눈박이 등대처럼 살든 엄마마저 세상을 떠난 뒤 둘숨하나 내주고 날숨으로 버티며 그렇게 걸어간 딸의 간병기는 어언 23년이 되든 해를 끝으로 돌담 밑에 못다한 사연을 묻어둔 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길을 물어 찾아 오기도 하더만 그렇게 먼 곳도 아닌 쓸쓸한 무덤가엔 아들들의 모습은 수년이 흘러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출처: 노자규 웹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