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빨간 선인장 (김상희.1969)

= 노래 이야기 =

집에서 반려식물을 키울 때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참 많으시죠? 신경 써서 돌본다고 하는데도 이유 없이 시들어버리면 속상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닌데요.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는 반려식물 중에 하나가 바로 ’선인장‘이죠.  선인장은 사막처럼 더운 곳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눈 내리는 산악 지대에서 자라는 선인장도 있을 만큼 종류가 참 다양한데요.

특히, 사막에 있는 선인장은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될 때가 많고요.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잎이 퇴화돼서 뾰족한 가시로 바뀌었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인장은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인생에 비유 되기도 하는데요.

우리 가요 중에도 ’선인장‘을 노래해서 큰 사랑을 받은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1969년, 김상희 선배님이 독집앨범으로 발표해서 큰 사랑을 받았던 ’빨간 선인장‘인데요. 이 노래는 원래 1968년 방영된 KBS TV 드라마 ’빨간 선인장‘의 주제가였습니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 ’빨간 선인장‘은 자식을 잃은 미혼모의 슬픈 모정과 월남전의 비극을 그린 드라마였는데요. 전계현씨를 중심으로 최불암, 문오장, 박재섭씨가 그려나가는 사각관계를 애틋하게 그리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던 인기 드라마였죠.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인기리에 방송이 되다가 중간에 제목이 바뀌는 해프닝이 일어납니다. 바로 ’빨간‘이라는 단어가 문제가 된 거였죠.

 

반공을 앞세웠던 그 시절. 치안국 문화반의 방송 담당자가 왜 하필이면 드라마 제목이 '빨간 선인장'이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결국 드라마는 방송사 자체적으로 '빨간'이란 글자를 빼고, 방영되던 중간에 '선인장'이라는 제목으로만 나가는 수난을 겪었는데요. 그래도 가요를 검열할 때는 ’빨간 선인장‘이란 제목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주제가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드라마 ’빨간 선인장‘을 집필한 ’윤혁민‘선생님이 ’윤석민‘이란 이름으로 가사를 썼습니다. KBS 악단장이었던 김강섭 선생님이 곡을 쓰고,  그 당시 ’울산 큰 애기‘, ’경상도 청년‘, ’대머리 총각‘,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등을 노래하면서 인기정상에 있었던 김상희 선배님이 노래하면서  ’빨간 선인장‘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특히, 김강섭 선생님과 김상희 선배님은 1967년.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로 이미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에서 김상희 선배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면, 연이어 함께 작업한 ’빨간 선인장‘에서는 애잔 하면서도 힘 있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김상희 선배님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지를 새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 마른 잎이 굴러도 찬바람이 불어와도
  내 가슴은 언제나 따스한 님의 입김
  앙상한 가지마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내 가슴은 언제나 따스한 님의 음성

  혼자서 가는 길이 외롭고 괴로워도
  눈물에 젖은 길이 자꾸만 흐려져도
  앙상한 가지마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빨간 선인장은 봄을 기다립니다 ”


김상희 선배님은 처음 데뷔할 때만 해도 발랄하고 경쾌한 노래들을 많이 불렀지만, 이 노래를 통해서 톡톡 튀는 매력뿐만 아니라, 애수에 젖은 목소리로 마음을 위로해주는 목소리로 사랑받았고요. 지금도 그때와 변함없는 외모와 목소리로 여전히 가요계의 큰 선배로 활동하고 있어서 후배로서 참 든든합니다. 

역시 김강섭 선생님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가요계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는데요. 수 십년 동안 KBS 관현악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작곡가와 지휘자로 수많은 노래들을 만들었죠. 김상국의 ’불나비‘, 나훈아의 ’흰 구름 가는 길‘, 문정선의 ’파초의 꿈‘, 이용복이 ’그 얼굴에 햇살을‘과 같은 가요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을 모아 불렀던 군가 ’팔도 사나이‘와 ’너와 나‘같은 노래까지 작곡했고요.

특히, 1985년에 맨처음 ’가요무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휘를 맡아서 1995년 정년퇴임 이후에도 2005년까지 상임지휘자로 ’가요무대‘와 20년 동안 동고동락을 했던 주인공이자, 우리 가요의 산 증인이고, 전설이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작년에 90세의 일기로 소천 하시면서 많은 가요팬들이 존경심과 안타까움 속에 보내드려야만 했습니다.  

좋은 노래의 힘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노래가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거죠. ’빨간 선인장‘이 단순한 드라마의 주제가를 넘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힘든 순간마다 이 곡을 나의 노래처럼 부르면서 봄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일 겁니다.

거친 바람이 몰아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시간  ’빨간 선인장‘을 함께 불러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