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망향초 사랑 (백난아.1941)

= 노래 이야기 =

봄이 되면서 제주도 여행 많이들 가실 텐데요. 제주시에서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서쪽 일주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제주시 한림읍 중산간 마을에 도착하면, 멋진 팽나무들이 나오고요. 그 사이에 따사로운 햇볕을 한가득 안고 있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청풍명월'이라고 불리는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입니다. 이곳에는 명월대와 명월진성, 명월 팽나무 군락지 등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데요.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명한 국민가수가 바로 '찔레꽃'과 '낭랑18세'로 유명한 '백난아' 선배님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에서 얘기하는 곳이 바로 백난아 선배님이 그리워했던 고향 '한림읍 명월리'였고요. 그래서 지금 이곳을 방문하면, 이제는 학생 수가 적어서 폐교가 된 명월국민학교와 함께 '백난아 기념관'을 만날 수 있고, 명월국민학교의 남쪽으로 네 번째 집이 바로 백난아 선배님이 태어난 생가로 지금도 그 터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나그네 설움'과 '번지없는 주막' 등으로 유명했던 백년설 선배님이 양녀라고 부를 만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가수로 데뷔했던 백난아 선배님은 본명이 '오귀숙'이었지만, 백년설 선배님이 '난초처럼 청아하다'라는 뜻에 자신의 성을 붙여서 '백난아'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줬다고 하지요.

워낙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기를 모았던 백난아 선배님은 1941년, 작곡가인 김교성 선생님과 작사가인 김영일 선생님과 함께 만주공연을 갔다가 그곳에서 독립군을 비밀리에 만나게 되었고요. 공연을 마치고 제주도의 명월대로 돌아와 독립군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었고, 그 곡이 바로 '찔레꽃'이라고 전해집니다. 

'찔레꽃' 외에도 백난아 선배님의 노래는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우리 민족의 설움을 위로하고 그리움을 달래주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망향초 사랑'입니다. '망향초 사랑'은 1941년 성보극장에서 개봉한 "아름다운 청춘"이라는 영화의 주제가였습니다. 이 영화는 초기 제목이 원래 '반도의 봄'이었다가 개봉하면서 제목이 바뀌었는데요. 영화의 내용은 영화 '춘향전'을 제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당시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영화 제작과정이 상세하게 잘 그려지면서 지금도 웰메이드 영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영화지요. 주제가인 '망향초 사랑'도 화제를 모았는데요. 특히 백난아 선배님의 가늘면서도 콧소리가 섞여있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음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꽃다발 걸어주던 달빛푸른 파지장
 떠나가는 가슴엔 희망초 핀다
 도라는 울어도 나는야 웃는다
 오월달 수평선에 꽃구름이 곱구나

​ 물길에 우는새야 네 이름이 무어냐
 뱃머리에 매달린 테프가 곱다
 고동은 울어도 나는야 웃는다
 그믐달 수평선에 파랑새가 정답다"


노래 제목에 등장하는 '망향초'는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은 아니고요. 바랄 망(望), 시골 향(鄕)에 풀 초(草)를 써서 만든 단어로, "고향을 떠올리는 풀"을 말합니다. 옛날 고전문학에서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가을이면 고향생각에 젖어들게 하는 국화를 망향초(望鄕草)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노래 가사에는 '망향초'라는 말 대신 '희망초'가 등장하는데요.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가슴에 품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망향초'를 '희망초'라고 노래하고 있지요.  

이 곡이 발표된 시기는 일본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때였고요. 오랜 세월 일본의 영향을 받다보니, 노래 가사에도 '부두'를 뜻하는 '파지장'과 '징'을 뜻하는 '도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망향초 사랑'은 박영호 선생님이 작사하고 이재호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로 해방 후, 박영호 선생님이 월북하면서 금지곡이 되자 반야월 선생님이 노래를 개사해서 백난아 선배님이 다시 불렀는데요. 개사한 노래가사를 소개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꽃다발 걸어주던 달빛 푸른 밤 부두
 떠나가는 가슴엔 망향초 핀다
 고동은 울어도 나는야 웃는다
 수평선 가물가물 은구름이 곱구나 

 카네션 던져주며 손 흔들던 밤 항구 
 돌아오마 속삭인 맹서는 길다
 이별은 슬퍼도 나는야 웃는다
 꽃구름 아롱아롱 새희망을 부른다"


아무리 시대가 엄혹해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숨막히던 시절, 한줄기 청량한 바람처럼 희망을 전해주고, 위로를 전해주고, 설움을 달래주었던 선배님들의 옛 노래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드는데요. 혹시라도 제주여행을 떠나신다면, 한적하고 아름다운 한림읍 명월리 '백난아 기념관'에 잠시 들러 시원한 제주바람을 맞으며 청아한 백난아 선배님의 노래를 감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