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처녀농군 (최정자.1968)

= 노래 이야기 =

'신민요'는 우리 전통 민요의 요소들에 새로운 양악을 접목시켜서 탄생한 가요장르인데요. 신민요가 처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였습니다. 1934년 '꽃을 잡고', '처녀총각', '노들강변'과 같은 신민요들이 크게 히트하면서 신민요 가수들이 인기스타로 급부상했고요.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에 고향의 정취가 가득한 신민요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면서 향수어린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930년대에 인기를 모았던 신민요들은 또다시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요. 이때부터는 '신민요'가 가요의 한 장르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김세레나'와 '김부자'씨 같은 대중가요 스타들이 탄생했지요.

특히 1960년대에 신민요풍의 가요들이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상황과 맞물려있습니다. 전쟁 이후, 가난했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했고요. 그렇게 타향살이를 하면서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노래들이 바로 고향의 정취가 느껴지는 신민요였고, 모두가 떠나버린 고향에 남아 농사일을 해야 했던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준 노래가 역시 신민요였습니다.

1960년대 당시 전체 인구의 ⅔ 정도는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농촌 처녀들은 도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을 기다리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지요.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해야 했던 '식모'나 '버스차장' 그리고 '공장 노동자'로 고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농촌에 남아있는 처녀들 역시 삶이 팍팍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돈 벌러 서울로 떠난 집안 젊은 남자들을 대신해서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을 도와 직접 지게를 지고 소를 몰면서 남자들처럼 농사일을 했던 처녀가장들도 참 많았던 것이 1960년대였고요. 그렇게 고단한 날들을 보내면서 위로삼아 불렀던 노래가 바로 1968년에 발표된 최정자 선배님의 신민요풍 가요인 '처녀농군'입니다.

1968년 최정자 선배님이 노래한 '처녀농군'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강인한 생활력을 발휘하는 한국의 여성상을 잘 표현한 노래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을 부양하던 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황우루'라는 이름으로도 많은 노래를 작사했던 '김일영' 선생님이 작사한 '처녀농군'의 가사는 홀어머니 모시고 농사일 짓는 처녀의 단단하고 야무진 모습을 그리고 있고요. '이철혁' 선생님의 흥겨운 장단과 멜로디는 고된 일을 할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고향풍경을 전해주는데요. 청아하면서도 힘 있는 최정자 선배님의 목소리는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감정을 완벽하게 전해주었고, 이 노래는 지금도 많은 후배가수들이 애창하는 최정자 선배님의 대표곡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홀어머니 내모시고 살아가는 세상인데
  이 몸이 처녀라고 이 몸이 처녀라고
  남자 일을 못하나요
  소 몰고 논밭으로 이랴 어서 가자
  해 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 가자
  밭갈이 가자

​  홀로 계신 우리 엄마 내모시고 사는 세상
  이 몸이 여자라고 이 몸이 여자라고
  남자 일을 못하나요
  꼴망태 등에 메고 이랴 어서 가자
  해 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 가자
  밭갈이 가자"


목소리가 맑고 깨끗해서 '청음(淸音)의 꾀꼬리 목소리'라는 소리를 들었던 최정자 선배님은 1964년 '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 '시월단풍 타는 마음'으로 데뷔해서 1967년에는 황우루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초가삼간'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요. 이어서 '처녀농군'까지 히트하면서 고향의 정서를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가수로 사랑받았는데요. '초가삼간'을 작사 작곡하고 '처녀농군'을 작사한 황우루 선생님과는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지요.

'처녀농군'은 소탈한 가사와 목가적인 풍경,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과 처녀농군의 결연한 삶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다보면 지금도 굳건하게 고향땅을 떠나지 않고, 논과 밭을 지켜내며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근면성실함으로 농사를 짓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는데요. 지금 흘리는 한여름의 구슬땀이 올가을 풍요로운 수확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의 깊은 뜻을 모처럼 다함께 새겨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