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목장 아가씨 (백설희.1954)

= 노래 이야기 =

지난봄에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에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손님이 종업원에게 '아가씨'라고 불렀는데, 그 호칭이 불쾌했다는 반응과 아가씨라는 호칭은 나쁜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반응으로 크게 엇갈렸는데요. 

사실, '아가씨'라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는 결혼할 나이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아가씨'란 단어가 시대 변화 속에서 좋은 의미가 퇴색되고 부정적 뉘앙스와 불편한 어감이 커진 것이 요즘의 현실이지요. 하지만 지금과 달리 예전 우리 가요 제목에는 다양한 아가씨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김백희 선배님의 '사이공 아가씨', 장세정 선배님의 '북경 아가씨', 성재희 선배님의 '상해 아가씨', 이해연 선배님의 '안남 아가씨', 금사향 선배님의 '홍콩 아가씨', 박애경 선배님의 '텍사스 아가씨' 등등 해외의 아가씨들도 있었고요. 

이미자 선배님의 '곡예단 아가씨', 박재란 선배님의 '구공탄집 아가씨', 봉봉 사중창단의 '꽃집의 아가씨', 허민 선배님의 '다방 아가씨', 박가연 선배님의 '목화 따는 아가씨', 배명숙 선배님의 '사공 아가씨' 등등 아가씨의 직업을 노래한 곡들도 많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서울 아가씨', '시골 아가씨', '섬 아가씨', '여수항 아가씨', '멋쟁이 명동 아가씨', '고향 아가씨', '몽금포 아가씨', '부산 아가씨' 등등 우리나라 각 고장을 대표하는 아가씨 노래들도 등장했고요. 

'국문과 아가씨', '범띠 아가씨', '콧대 높은 아가씨', '뒷골목 아가씨', '껌 씹는 아가씨'처럼 다양한 개성의 아가씨들을 노래한 곡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아가씨'들을 노래한 곡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가씨들의 순수한 감성이 아름다워서였는데요. 꿈도 많고, 사랑도 많고, 또 눈물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 가요에서 선호한 노래의 테마 역시 '아가씨'들의 사랑과 꿈과 이별과 행복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제목에 '아가씨'가 등장하는 여러 노래들 중에서 1950년대 이국적인 가사로 사랑받았던 노래가 바로 백설희 선배님의 '목장 아가씨'인데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목장'이 전통적인 단어가 아니지요. '목장'이라고 하면, 서구적인 느낌이 더 강한데요. 

6.25 전쟁이 끝난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에 유엔군의 파견으로 여러 외국문물들이 들어오면서,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고요. 이때부터 우리 가요에도 '목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목장'이 등장하는 노래들은 대부분 흥겨운 서구의 리듬을 사용해서 곡을 만들었고요. 가볍고 밝고 ㅇ쾌한 느낌을 전해주면서 전쟁 후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선사했지요. 


 "들꽃이 아름다운 푸른 언덕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 아가씨 흥~
  콧노래 흥겨웁게 부르면서 가네 멋지게 가네
  지평선 바라보는 구슬같은 두 눈동자
  꿈꾸는 두 눈동자 어여쁜 목장의 아가씨

  참새가 지저귀는 저문 언덕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 아가씨 흥~
  채찍을 보기 좋게 휘두르며 오네 웃으며 오네
  바람에 휘날리는 연실같은 검은 머리
  순정의 검은 머리 어여쁜 목장의 아가씨

  하늘에 달이 뜨고 밤이 오면은
  양떼를 재워 놓고 목장 아가씨 흥~
  포플러 그늘 밑에 님을 찾아 가네 남몰래 가네
  가슴을 녹여 드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
  사랑의 피리 소리 어여쁜 목장의 아가씨"


1954년, 손석우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박시춘 선생님이 작곡한 '목장 아가씨'에는 '양떼'와 '지평선' '포플러 그늘'처럼 이국적인 단어들이 등장하고요. 채찍으로 양떼를 모는 목장 아가씨의 아름다운 자태와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을 그리면서 듣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큼하고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꾀꼬리처럼 맑고 리드미컬한 백설희 선배님의 음색과 창법이 목장 아가씨를 더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데요. 백설희 선배님의 이름이 '에베레스트 산의 눈이 낮이나 밤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녹지 않고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듯 연예인으로서 높은 곳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란 뜻에서 지어졌듯이, 백설희 선배님은 전쟁 후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사시사철 눈부신 노래로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었습니다. 

예전에는 '목장'과 푸른 들판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이 우리가 동경했던 먼 나라의 풍경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도 '대관령'을 비롯한 여러 곳에 푸른 초원과 평화로운 양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목장들이 있고요. 평화로운 풍경의 목장을 찾아가서 힐링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아직도 무더운 요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목장의 낭만적인 정취를 노래 속에서 만나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