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녹슬은 기찻길 (나훈아.1972)

= 노래 이야기 =

요즘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경의선 숲길’인데요. 기존의 공원 형태를 벗어나서 길게 이어진 숲길은 2012년 3월 대흥동 구간을 시작으로 염리동, 새창고개, 연남동 구간, 원효로, 신수동, 와우교 구간이 2016년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의선 숲길’이라는 이름처럼 이 공원은 버려진 철길 ‘경의선’ 위에 시민들의 산책로가 만들어졌는데요. ‘경의선’은 경성의 ‘경’자와 신의주의 ‘의’자를 따서 만들어진 철도로 일제 강점기 때였던 1906년에 개통해서 남북을 관통하며 많은 물자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남북이 분단되면서 경의선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반쪽자리 철길로 남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임진각에 가면, 경의선 장단역에 녹슨 증기 기관차가 놓여있구요. 

이 기관차는 6.25전쟁 당시 장단역에서 피폭돼서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옮겨와 문화재 제78호로 지정해서 전시하고 있고, 이 기관차의 몸체에는 무려 1,020개의 총탄 자국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서 그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기차와 끊겨버린 기찻길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슬픔을 노래한 곡이 만들어졌는데요. 그 노래가 바로 나훈아 선배님의 ‘녹슬은 기찻길’입니다. 

‘녹슬은 기찻길’을 작사한 김관현 선생님은 이 가사를 쓸 당시 한국일보의 기자였습니다. 1972년, 8월 29일 평양에선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렸고요. 우리나라 대표단이 북으로 향할 때, 언론사 기자들도 함께 동행했는데, 그 기자단에 김관현 선생님도 함께였습니다. 

육로를 통해서 북으로 가는 길, 김관현 선생님은 창밖으로 판문점 부근 철길 입간판에 쓰여있는 글을 보게 되는데, 그 문구는 이랬습니다. ‘철도 중단점 –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김관현 선생님은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그 순간의 느낌을 수첩에 적어 내려가면서 부모, 형제를 보고 싶어 하는 이산가족들 한을 피빛의 녹슬은 기찻길에 담아 통일을 바라는 노래로 승화 시켜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후, 서울 명동 오비스캐빈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 평소 친하게 지냈던 작곡가 홍현걸 선생님이 합석했고요. 그 자리에서 김관현 선생님은 홍현걸 선생님에게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글귀에 관한 단상을 이야기하며, 함께 노래를 만들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사를 완성한 김관현 선생님은 그 노랫말을 홍현걸 선생님에게 건넸고요. 홍현걸 선생님은 다음날 9시간만에 악보를 완성해서 탄생한 노래가 바로 ‘녹슬은 기찻길’입니다.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
 어이해서 피빛인가 말 좀 하렴아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어버이 정그리워 우는 이 마음

​ 대동강 한강물은 서해에서 만나
 남과 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너처럼 내 마음도 울고 있단다 “


이렇게 만들어진 ‘녹슬은 기찻길’은 일주일 후, 인기가수 나훈아 선배님이 취입해서 음반에 실었습니다. 당시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등의 해빙무드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이 곡은 1983년 ‘남북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 당시에도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사람들의 망향가로, 가족을 잃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담은 노래로 다시 소환되어서 수많은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작년 6월 14일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한미동맹·정전협정 70주년 기념 ‘한미연합 호국음악회’ 때도 이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제가 6.25가 발발한 지 74년이 되는 날이었는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의 참혹한 아픔에 무뎌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그리운 고향과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의 한 맺힌 마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아직도 1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날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언젠가 통일이 되어서 끊어진 경의선 철길을 달려 고향으로 가고픈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비단 그분들만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인데요. 부디 그 꿈이 꼭 이뤄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철마가 씩씩하게 달리는 그 날을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