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밴드의 원조 “말 달리자” 외친 30년… 30년 더 달려볼게요!

韓인디음악 30주년과 함께… 활동 30주년 맞은 ‘크라잉넛’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크라잉넛 멤버 한경록(49·베이스), 이상혁(49·드럼), 김인수(51·키보드 및 멀티 악기), 이상면(49·기타), 박윤수(49·보컬, 기타). 활동 30주년임에도 이들은 음악 동아리 성격이 짙었던 데뷔 초의 활기를 간직하고 있다. 인터뷰 직전까지 각종 악기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멤버 이상혁이 구해온 “끝내주게 멋진 멕시코산 리퍼 기타”를 주제로 긴 수다가 이어졌다./박성원 기자

국내 가요계는 올해를 ‘한국 인디 음악 30주년’으로 부른다. 1995년 4월 5일 홍대 클럽 ‘드럭’에서 열린 커트 코베인(밴드 너바나 보컬) 추모 1주기 행사를 한국 인디 장르의 태동 시점으로 삼는다.

같은해 이 클럽 대표 밴드로 공연을 시작한 크라잉넛(김인수,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경록)이 1996년 10월 노래 ‘말 달리자’를 실어 낸 첫 정규 음반 ‘아워 네이션 1’은 한국 최초로 인디씬의 시작을 알린 앨범으로 꼽힌다.

대형 기획사 자본 없이 자체 제작해 히트를 시킨 이례적인 사례였다. 같은 해 1월 배드 테이스트란 인디 밴드가 낸 자체 제작 음반도 있었지만, 유통 범위가 좁고 대중적 인지도를 거의 얻지 못 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기획사 드럭레코드 합주실에서 만난 크라잉넛은 “당시 커트 코베인 추모 열기는 홍대 모든 록 클럽이 인디 공연을 기획하는 계기가 됐고, 많은 밴드의 자작곡 발매 기회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저희를 비롯해 1세대 밴드들 대다수가 PC통신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천리안 등의 록 동아리 모임에 모여 자주 음악 이야기를 나눴어요. ‘얼터너티브’의 뜻이 바로 ‘대안’이잖아요. 이전까진 미국, 영국 밴드 카피하며 기타 속주에 몰두했다면, 그때는 ‘연주 못해도 자작곡 있는 팀이 먹어준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죠.(이상면)”

이 시기 크라잉넛을 비롯해 노브레인,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허클베리핀, 롤러코스터, 삐삐밴드 등 다양한 색채의 팀이 쏟아졌다. 한경록은 “1세대 인디 밴드들은 라이브 클럽을 통해 음반을 기획했고, 각각의 성향에 맞는 팀이 모여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저희가 있던 드럭은 펑크와 얼터너티브, 재머스는 약간 펑키한 음악들, 스팽글은 사이키델릭한 색채였죠.” 각 클럽들이 주최한 오디션은 인디밴드 인재들을 발굴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인디밴드 크라잉넛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드럭레코드에서 본지와 인터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크라잉넛은 데뷔 30주년이자 인디음악 30주년을 맞이한 소회를 밝혔다./박성원 기자

‘말 달리자’가 히트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은 “첫 음반 발매 당시에는 모두 ‘이게 될까?’ 했는데, 발매 후에는 ‘이게 되네!’란 소리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이 당시 돈 없는 후배 뮤지션들을 위해 자신들의 연습실을 쪼개 제공하던 서울 문정동의 ‘퍼플 존’이란 녹음실에서 100만원 수준 비용을 들여 3일 만에 녹음했다.

A면에는 크라잉넛, B면에는 이들과 함께 드럭에서 활동하던 밴드 옐로우키친이 녹음한 스플릿 음반 형태. 멤버들은 “가위바위보로 승자는 A면, 패자는 B면을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날것의 소리”라며 웃었다.

“마스터링(음질 보정)도 전문 음악 업체가 아닌 영어 교재 녹음하는 어학사에 맡겼어요. 소리는 손도 못 대고, 곡 순서만 정렬했으니 음질이 조악했죠. 그래도 그 시대의 낭만과 생생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앨범이에요.”(박윤식)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인디밴드 크라잉넛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드럭레코드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발매된 공연 포스터를 들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 음반에 실린 노래 ‘말 달리자’가 1999년 해태제과의 브라보콘 CM 송으로 쓰였을 땐 “드럭 입장 대기 줄이 건물을 한 바퀴 돌 정도로 늘어났다”고 했다. 멤버들은 그 인기의 이유로 “IMF 전후로 힘든 경제적 상황에서 여러 압박을 느끼고 해방구가 필요했던 이들이 자유분방한 노래로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가사 중 가장 사랑 받는 건 ‘닥쳐!’를 연신 외치는 부분. 멤버들은 “초기 녹음본보다 방송용 가사에선 욕설을 많이 걷어냈는데도 ‘닥쳐’란 말이 공중파에 나오는 자체가 당시에는 센세이셔널 했다”고 했다.

올해로 클럽 드럭의 이름과 함께 활동 30주년을 맞은 데 대해선 “많은 밴드가 쉽게 사라져간 가운데 전업 밴드로, 대학생 자녀의 아버지가 될 때까지 인디 음악을 이어온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한경록은 “초중고 소꿉친구들이 지금까지 멤버 교체 없이 왔다는 게 신기하고, 참 고맙다. 인디 밴드에 이런 길도 가능하다는 걸 계속해서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가끔씩 데뷔 초 뮤직비디오 속의 젊은 자신들이 보고 싶을 땐 노래방에서 우리 노래를 불렀다”고도 했다. 그때마다 든 생각은 “고놈 참 말 안 듣게 생겼다”였다.

“반항적인 음악에 맞춰 머리 염색, 코뚫기, 귀뚫기, 어릴 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죠. 음악에 패션도 참 중요하잖아요. 그런 걸로 밴드들끼리 서로 인디 음악가란 소속감을 느꼈고요.”(한경록) “그땐 그런 차림으로 길만 걸어도 시비가 붙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그게 가끔은 좀 서운해요. 마치 누군가 막 공부해라 닦달해야 딴짓할 때 더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박윤식)

그만큼 “지난해 국내 록 밴드 붐이 반가웠다”고 했다. 이상혁은 “낙원상가 악기가 잘 팔리고, 합주실이 붐비는 걸 보고 진짜 밴드 붐이 왔구나 싶었다”고 했다.

“2005년 방송 노출 사고로 서울 시장이 직접 나서서 인디 밴드를 다 검열하겠다 하고, 라이브 클럽은 자꾸 사라지는데 부비부비 춤추는 클럽만 유행하고. 별별 시기를 다 겪고도 다시 밴드들이 많아지니 당연히 반갑죠.”(박윤식)

다만 “우리나라에도 밴드만큼 오래 문화를 이어오는 클럽이 계속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다. 이들을 탄생시킨 드럭은 2020년 팬데믹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일본은 라이브 클럽이 일반 호프집처럼 인식될 정도로 친숙해요. 저희가 가끔 교토의 ‘다쿠다쿠’란 목조집으로 된 양조장을 개조한 클럽에 공연을 갑니다. 영업한 지 벌써 50년이 됐어요. 이게 일본에선 희귀한 경우가 아닙니다.(김인수)”

지난해 신곡 ‘외로운 꽃잎들이 만나 나비가 되었네’를 발매한 이들은 “1년에 한 번씩 꼭 곡을 내기로 약속한 만큼 올해도 신곡을 작업 중”이라고 했다.

오는 22일 서울 홍대 터줏대감 클럽으로 꼽혀온 롤링홀의 30주년 기념 공연에 서고, 5월 10·11일에는 30여 팀 인디 밴드들과 함께 한강 난지공원에서 ‘인디&크라잉넛 30주년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30년을 더 노래해 60주년을 맞았을 땐 어떤 모습일까. 김인수가 말했다. “80년대 롤링스톤스가 미국 투어를 했는데 기사 헤드라인이 이랬어요. 어떻게 마흔이 넘어서 록을! 그런데 저흰 아직도 하고 있으니 60주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크라잉넛

서울 동부이촌동 동네 친구들이 1993년 결성한 국내 대표 펑크 밴드.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 ‘룩셈부르크’ 등이 대표곡. ‘우는 호두’란 뜻의 팀명은 돈 없던 고등학생 시절 버스비로 호두과자를 사 먹고 집에 걸어갈 때 지은 이름.

출처: 윤수정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