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기로 결심했다

‘대통령 염장이’는 내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문구가 인상 깊다”고 했다. 같은 말을 3번쯤 한 것으로 보아 꽤나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는 전직 대통령 6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30여 년 차 장의사다.

최근 체험 취재차 염(殮)하는 법을 배우며 그를 만났다. 사진 속 문구는 이렇다. “인생은 어차피 ‘개마이웨이’다. 한 번 살다 죽을 인생 남의 눈치 살살 보며 하고 싶은 일 못 하고 살면 얼마나 억울하냐.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일을 하다 일 외적인 고민에 시달릴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처럼 보이진 않을까, 말실수한 건 없을까. 그럴 때 보려고 설정한 문구다.

‘남 시선 신경 쓰지 말라’는 취지의 명언을 법정스님도 쇼펜하우어도 루소도 남겼다는데 그리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죽을 때 후회한다” 소리를 들어도 딱히 와닿는 것 같진 않다.

나만 이러진 않을 것이다. 신입도 부장도 어쩌면 은퇴한 어르신도 비슷한 마음일 수 있다. 그러니까 법정스님도 쇼펜하우어도 루소도 이런 말을 남겼겠지.

염 배우러 간다고 하자 주변에선 하나같이 “정말 시신을 보는 것이냐” 물었다. 미묘한 표정 속 뒤섞인 낯섦과 당혹감, 막연한 두려움.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실습은 마네킹으로 했으나 망자와 만나는 일이 산 사람에겐 이렇게나 어렵다.

어쩌다 가까이 접할 순 있어도 결코 내가 경험할 순 없다. 말 그대로 ‘남의 일’이다. 그러니 멀게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웰다잉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몇 해 전부터다. 젊은 층 사이에선 덩달아 ‘죽음 체험’이 유행했다. ‘죽음 카페’라는 곳에서 관 속에 누워도 보고 눈도 감아보는 식이다.

그 무렵 고려대 당시 죽음교육연구센터장을 인터뷰했다. 미국에서 임종 전문가로 활동하며 죽음을 품위 있고 평온하게 맞이하는 법 등을 연구한 인물. 그는 “‘관에 들어가기’ 같은 건 죽음을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럽게 만들 수 있다”며 “죽음학은 결국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누구와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남 눈치 보며 사는 이유는 오늘도 살아야 하고, 내일도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관계가 내일로 이어지니까. 모르는 건 창피해지며 남과 다른 건 조심스러워진다.

한데 보자. 점심 메뉴를 자장면으로 통일할 때 괜히 짬뽕 시켰다가 종일 ‘저 눈치 없이 짬뽕 시킨 놈’ 될까 걱정하는 게 사회생활이라지만, 짬뽕 한 그릇 당당하게 못 시켜가며 살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하다. ‘자장면’과 ‘짬뽕’에 뭘 가져다 끼워도 말이 된다.

그러니 후회 없이 잘 죽는 법이라는 게 별게 없지 않을까. 다들 자장면으로 통일할 때 당당하게 “난 짬뽕”을 외치는 일이진 않을까. 그게 아직 죽음이 멀게만 느껴지는 ‘충분히 젊은’ 이들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법일 수 있다. 삶을 자신의 것으로 사는 일 말이다.

염장이는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이 오히려 자기 삶 살더라”고 했다. 죽음과 매일 대면하는 그가 내 메신저 문구를 인상 깊다고 말한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는 것도 같다.

/ 카페 2030
출처: 조유미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