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감독님' 덕분에 출세한 짜파구리

 

[김성윤의 맛 세상]김성윤 음식전문기자

 

한우 채끝 넣은 짜파구리, 영화 '기생충' 나와 화제

최근 고급 음식점과 호텔에서 새 메뉴로 등장

짜장면, 임오군란 때 中서 들어와 완벽히 한국화

'조상' 짜장면처럼 짜파구리도 화려한 변신 성공

 

'기생충 버전 짜파구리'가 마침내 고급 음식점과 호텔에도 등장했다. 짜파구리는 라면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음식. 영화 기생충에서 부잣집 여주인 연교(조여정)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정부 충숙(장혜진)에게 "8분 뒤 도착하니까 짜파구리 좀 해주세요. 냉장고에 한우 채끝살 있을 텐데 그것도 좀 넣으시고"라고 전화한다. 저렴한 인스턴트 라면에 값비싼 한우를 넣어 먹는 이 장면은 빈부 격차를 실감 나게 표현하며 화제가 됐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한 뒤로 짜파구리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한우 전문점은 '한우 채끝 짜파구리'를 하루 20그릇만 한 달간 한정 판매하는 행사를 18일 시작했다. 큼직하게 썬 최상급 한우 채끝등심 덩어리를 푸짐하게 올려 영화에 나온 짜파구리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한 그릇에 1만5000원. 아무리 한우를 얹었다지만 그래 봤자 라면인데 이렇게 비싸다니 싶기도 하지만, 식당 주인은 "밑지는 장사"라며 "돈보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오마주(존경·감사의 표현)로 하는 행사"라고 했다. 이 식당의 한우 채끝 판매가는 1인분(150g)에 4만8500원. 이 채끝이 짜파구리 한 그릇에 60g씩 들어간다. 라면 값 빼고도 고기만 1만9400원어치가 들어가니, 1만5000원에 팔아도 4000원 이상 손해 보는 셈이긴 하다.

 

여의도 한 호텔은 17만원(세금 별도)부터 시작하는 객실 패키지를 이용하는 투숙객에게 한우 채끝등심에 버금가는 고급 부위인 부챗살을 넣은 짜파구리를 룸 서비스로 제공한다. 호텔 관계자는 "돈보다는 기생충 짜파구리가 워낙 화제다 보니 이를 활용하기 위해 패키지를 개발했다"고 했다.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쳐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짜장 라면이다. 라면 제조사인 농심 홈페이지에 소개된 '공식' 짜파구리 요리법에 따르면 면은 짜파게티와 너구리 것을 모두 넣지만, 분말 수프는 짜파게티는 한 봉지를 다 넣지만 너구리는 3분의 2만 넣는다. 살짝 매운맛이 나는 짜장 라면. 일부 중식당에서 파는 '사천 짜장면'과 비슷하다.

 

짜파구리를 언제 누가 처음 만들어 먹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2009년 한 네티즌이 농심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처음 화제가 됐다는데, 인터넷에는 1990년대 중후반 군부대에서 개발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급이 항상 달렸던 짜장 라면의 양을 늘리려고 면발 굵기가 비슷하고 조리 시간(5분)이 같은 너구리를 짜파게티와 함께 끓이면서 탄생했다는 설(說)이다.

 

이후 소수의 마니아만 먹는 '컬트' 또는 '비주류' 라면이던 짜파구리는 2013년 공중파를 통해서 대중화된다. 2013년 연예인 아빠와 자녀가 함께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아동이 짜파구리를 너무나 맛있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최근 기존 제품을 그대로 소비하지 않고 취향대로 고쳐서 즐기는 '모디슈머(modify(수정하다)+consumer(소비자))'가 등장하면서, 짜파구리는 '원조 모디슈머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짜파구리의 현란한 변신은 그의 '조상' 짜장면과 너무나 흡사하다. 짜장면의 원조는 중국 자장몐(炸醬麵:작장면)이다. 138년 전 임오군란(1882년) 때 청나라 군대와 함께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중국 상인들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고, 자장몐은 이들이 즐겨 먹던 산둥 지역 국수다. 국내에서 '춘장'으로 알려진 몐장(麵醬·중국 된장)을 기름에 볶아 오이 같은 채소와 함께 비벼 먹는 소박한 국수 요리였다.

 

자장몐은 짜고 뻑뻑해서 한국인 입에 맞지 않았다. 1948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인천 영화식품에서 춘장에 캐러멜을 섞었다. 캐러멜이 더해진 춘장은 단맛이 나면서 훨씬 부드러워졌다. 또한 국물이 없는 원조 자장몐과 달리 물전분(물에 푼 전분가루)을 풀면서 짜장 소스가 걸쭉한 액체로 바뀌었다.

 

달고 부드럽고 소스가 국물처럼 흥건한 스타일로 변신한 짜장면은 한국인 입에 훨씬 잘 맞았고, 마침내 한국인의 국민 외식 메뉴 자리를 꿰차게 된다. 중국 음식으로 여기는 중국인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한국화된 짜장면처럼, 짜파구리도 앞으로 얼마나 대담하게 변화 혹은 발전해 우리 입맛을 사로잡을지 궁금해진다.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