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아내 '니코틴' 살해..일기에 "고맙다" 쓴 남편

[사건의 재구성]

✔"40살 전 10억 인생목표"..보험금 노리고 2년간 계획
✔"아내 극단선택·본인 심신상실" 주장..무기징역 확정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월 매출 100만 원가량의 카페를 운영하던 A씨(22)에게는 뚜렷한 인생 목표가 있었다. 마흔살이 되기 전 10억 원의 재산을 모을 것과 7급 공무원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20대 청년의 꿈처럼 보이지만, 이 계획 이면에는 동반자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한 뒤 보험금을 수령한다는 치밀하고 끔찍한 과정이 숨어 있었다.

A씨가 살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 자신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B씨(20·여)를 만난 뒤부터다.

B씨는 A씨와 만나는 동안 폭행과 욕설에 시달리면서도 A씨 곁을 떠나지 못했다. A씨가 B씨와의 이별을 두려워했고, 헌신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기 때문인데, 이 역시 계획을 위한 A씨의 연기에 불과했다.

이 같은 사실은 A씨가 2016년 남긴 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A씨는 당시 일기장에 "B와 싸우고 설득해서 보험에 가입시킨다. 예상금액 10억", "겁나서 도망가고 싶다. 성공이 나에게 가져다 줄 보상을 떠올리면 쉽다"고 적었다.

A씨는 B씨가 성인이 된 2017년 혼인신고를 재촉하기 시작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같은 해 4월 14일 몰래 혼인신고를 마쳤다. B씨를 살해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밑그림이 거의 완성된 시점이다.

범행 마지막까지 일기와 음성메모로 계획을 점검한 A씨는 혼인신고 직후인 4월 24일 B씨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출국 전 공항에서 수령인을 자신으로 하는 보상금 5억 원의 해외여행보험도 가입했다.

B씨는 여행 계획을 미리 짜놓고 둘 사이에 생길 아기 이름을 미리 지어놓는 등 신혼여행에 한껏 들떠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정을 꾸려나갈 계획도 갖고 있었다.

총 4박 5일 일정에 짐도 한가득 챙겼다. 그렇게 여행 첫날 행복한 시간을 보낸 B씨는 다음 날인 25일 새벽 A씨가 몸에 좋다며 모두 세차례 놓아준 주사를 맞고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B씨가 맞은 주사액은 니코틴 원액으로 밝혀졌다.

이날 숨진 B씨를 숙소에 남겨둔 채 A씨는 태연히 일본 관광을 즐겼다. 이 사실 역시 A씨의 일기장에 남았는데, 당시 A씨는 "일본 여자를 2명 만났다. B에게 배려하는 방법을 배워 쉽게 느껴졌다. 고맙다. B는 많은 걸 알려주고 떠났다"고 기록했다.

A씨는 정황을 의심한 보험사 직원에 의해 보험금 지급이 거절당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의 수사로 결국 범행이 밝혀졌다. A씨가 B씨를 살해하기 전인 2016년 12월 C씨(20·여)를 일본에서 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려다 실패한 사실도 경찰 조사 중 드러났다.

범행에 사용한 니코틴 원액은 전자담배를 피워야 한다며 C씨가 대신 구매하도록 했고, C씨에게는 주사가 아닌 치사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음료와 물을 마시게 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니코틴의 살상 효과를 경험하지 못한 A씨는 이후 동물 실험까지 계획했고, 관련 자료를 모으거나 소설을 읽어가며 범행에 참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C씨에 대한 범행은 단순히 골려주고자 한 것일 뿐 살해할 목적이 없었고, 마셨더라도 사망할 정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B씨 살해에 대해서는 B씨가 숨지기 전 죽음을 암시하는 음성메시지를 가족들에게 남긴 점을 강조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일기장에 적어 놓은 계획 중 하나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자 A씨는 과대망상, 강박증 등 정신 질환으로 심신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검찰은 A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2018년 8월 30일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임신했거나 임신했다고 믿고 있었던 B씨가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고, 범행 동기와 수법, 경위, 범행 후 정황 등에 비춰 사회로부터 영구적 격리가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고, 검찰 역시 항소해 1심과 같이 재판부에 사형 선고를 요구했다.

A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술을 많이 마셔 죽기 좋을 것 같다. 오빠는 아무 잘못 없다'고 적힌 장문의 글을 B씨의 유서라며 제출하기도 했다.

항소심을 심리한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필적 감정 등을 토대로 유서를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며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최후까지 본인의 주장을 계속하던 A씨는 항소심에도 불복해 상고했지만 기각돼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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