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남성 넘버원 (박경원.1957)

= 노래이야기 =

바로 어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에서 '한국의 희극인'으로 구봉서 선배님과 남보원 선배님을 주인공으로 한 기념우표 64만장을 발행했는데요. 요즘 친구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구봉서 선배님과 남보원 선배님의 코미디를 보면서 근심을 달랬던 분들이 참 많을 겁니다. 

남보원 선배님은 전국 팔도 사투리를 너무나도 맛깔스럽게 구사했고, 뱃고동 소리, 기차소리, 전투기 등의 소리를 성대모사하면서 큰 웃음을 선사했었지요. 특히, '일왕 항복 방송'을 성대 모사할 때면 우리 국민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원맨쇼의 대가이면서 백남봉 선배님과 함께 콤비로 활동하며 큰 웃음을 주었던 남보원 선배님은 코미디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관심을 갖고 여러 노래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박재홍 선배님의 '청춘 나그네' 가사를 쓰기도 했고, 김효순 선배님의 '봄놀이 꽃노리'를 작곡하기도 했지요. 

다재다능했던 '남보원' 선배님의 본명은 '김덕용'인데요. 예명을 '남보원'으로 한 것은 '남쪽에서 으뜸가는 보배가 되자'라는 뜻과 코미디에서 'No.1'이 되자는 뜻을 동시에 나타낸 거라고 해요. 예전에는 으뜸을 가리켜서 영어 '넘버 원'으로 지칭했고요. 영어 '넘버원'을 '남버원' '남보원'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요 중에서도 '남성넘버원'이라는 노래가 등장해서 큰 사랑을 받았고, 노래 가사에 나오는 '넘버원'을 '남버원'이라고 발음하고 있지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노래 '남성넘버원'은 박경원 선배님의 노래입니다. 박경원 선배님은 가수들 사이에서도 음정 박자가 정확하고 발성이 유려한 정통파 가수로 정평이 나있는데요. '만리포 사랑'과 '이별의 인천항'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박경원 선배님은 1957년, 세태를 풍자하는 경쾌한 노래를 발표하게 되는데, 그 곡이 바로 '남성넘버원'입니다. 반야월 선생님이 작사하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박시춘 선생님이 작곡한 '남성넘버원'은  사회상을 꼬집은 풍자가요로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시원한 사이다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전쟁이 끝난 후, 급속한 서구풍조가 유입되었고, 물질만능주의가 서서히 번져가고 있던 시절, 바로 그런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유머러스하면서도 통렬하게 풍자하는 노래가 바로 '남성넘버원'이었지요. 


"유학을 하고 영어를 하고 박사호 붙어야만 남자인가요
나라에 충성하고 정의에 살고 친구간 의리 있고 인정 베풀고
남에겐 친절하고 겸손을 하는 이러한 남자래야 남성넘버원

다방을 가고 영화를 보고 사교춤 추어야만 여자인가요
가난한 집안살림 나라의 살림 알뜰이 살뜰이로 두루살피며
때묻은 행주치마 정성이 어린 이러한 아낙네가 여성넘버원

대학을 나와 벼슬을 하고 공명을 떨쳐야만 대장부인가
부모님 효도하고 공경을 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 위하고
귀여운 자녀 교육 걱정을 하는 이러한 남녀래야 한국남녀요"


요즘 가치관에 비춰보면, 노래 가사가 '남자'의 역할, '여자'의 역할을 따로 구분해서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래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언제나 반영하고 있지요. 이 노래가 발표됐던 시기가 1958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곡은 오히려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시대정신이 살아있는 곡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학벌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학 간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씁쓸하기도 한데요. 남들 보기에 으스댈 수 있는 사회적 성공보다 가족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에서는 '남성넘버원'의 노래 가사 속에서 요즘 우리들이 추구하는 '소확행'의 의미도 발견할 수 있고요. 그래서 시대는 달라졌지만, 노래가사에 공감되는 부분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젊어서 원대한 꿈과 포부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다보면 부귀와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주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박경원 선배님의 유쾌하고 경쾌한 노래 속에서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