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피리 불던 모녀고개 (황금심.1962)

우리나라 최초로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는 수식어가 등장한 것은 바로 가수 '황금심'선배님의 등장과 함께였습니다. 황금심 선배님의 매력적인 비음은 가성과 진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마치 새가 우는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는데요. 특히, 새 중에서 '꾀꼬리'소리처럼 여리여리하고 낭랑하다고 해서 황금심 선배님을 가리켜 '꾀꼬리 같은 가수'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거지요.  

황금심 선배님의 본명은 '황금동'이었는데요. 어린 시절, 당시 경성의 한복판이었던 종로 청진동에서 여관업을 하는 부모님 슬하에 자라났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여관이다 보니, 음악을 하는 예인들이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는데요. 당시 종로 일대였던 청진동에서 수송동, 인사동, 낙원동으로 이어지는 피맛골 뒤로는 여관과 요정, 주점들이 많았는데 이곳에선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들이 머물면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요. 

여관집 일곱 자매의 막내딸이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노래들을 전해 듣고, 음악 하는 손님들과도 어울리게 된 것은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화류춘몽'을 노래했던 가수 이화자 선배님이 노래를 좋아하는 여관집 막내딸이 귀여워 노래를 잠깐 가르쳐줬는데요. 

노래를 따라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이화자 선배님이 본격적으로 노래를 가르치게 되면서 소녀의 실력은 일취월장 발전했고요. 1936년, 오케레코드 전속가수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열다섯 소녀 '황금동'은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황금심 선배님은 가수로 활동하면서 두 개의 예명을 사용했는데요. 15살의 나이로 데뷔했던 1936년, 본명인 '황금동'이 너무 남자 같다면서 소속 레코드사 '이철'사장이 지어준 이름 '황금자'로 두 곡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노래가 바로 '지는 석양 어이하리'와 '왜 못오시나'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가수활동을 반대했던 엄격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아버지 몰래 가수활동을 해야만 했고요. 1938년, 또다시 예명을 '황금심'으로 바꾸면서 이부풍 선생님의 노래를 받아 불렀는데, 그 곡이 바로 최고의 히트곡인 '알뜰한 당신'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황금심'이라는 이름 석 자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40년, 황금심 선배님은 운명 같은 첫사랑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타향살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고의 가수 고복수 선배님이었습니다. 반도 악극단에서 함께 '춘향전'을 공연하면서 이도령 역을 맡았던 고복수 선배님과 춘향역을 맡았던 황금심 선배님은 그 공연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요. 

열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남몰래 연애를 하면서 1941년,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 가수 부부 1호'가 탄생했고요. 팬들은 두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열렬하게 응원했고, 역시나 그 바람대로 두 분은 평생을 잉꼬부부로 함께하면서 같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함께 '장한몽가'와 같은 듀엣곡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고복수 선배님은 1957년,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에서 "팬이여 안녕"이라는 타이틀로 은퇴공연을 하면서 '조양 악극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워낙 어질고 순한 성격에 평생 노래밖에 몰랐던 고복수 선배님에게 어쩌면 사업이란 잘 맞지 않는 옷과 같았나 봅니다. 

영화도 제작해보고, 운수업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출판사의 외판사원으로 일하는 날도 있었고요.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황금심 선배님은 생계를 위해 영화와 드라마 주제가를 부르면서 많은 노래들을 발표하게 됐는데요.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황금심 선배님의 제2의 전성기였고요. 선우일선 선배님의 노래를 재취입한 '대한팔경'과 신민요 '뽕따러 가세',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었던 '장희빈', 그리고 영화 주제가였던 '피리불던 모녀고개'등이 바로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들입니다. 

이중에서 1962년 발표된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의 '피리불던 모녀고개'는 영화배우 이민자, 엄앵란, 최무룡씨가 주연을 맡아 그 당시 10만 관객이 들었던 흥행영화 '피리불던 모녀고개'의 주제가였습니다. 

짧게 줄거리를 소개해드리면, 명문가의 아들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골처녀와 결혼을 하는데요. 의사였던 남자는 과로로 사망하고, 시부모의 학대와 구박이 심해지자 여자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오게 되지요. 하지만 딸아이가 심장병에 걸려 위독한 상황에서 병원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 시부모는 말합니다. 

"모녀간의 인연을 끊으면 아이를 치료해주겠다." 결국, 끊어지는 애간장을 뒤로하고, 딸아이를 시부모에게 맡긴 후, 여자는 떠나게 되는데요. 훗날, 딸아이는 의사가 되었고, 여자는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숨긴 채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딸의 연구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게 되고요. 뒤늦게 딸은 그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시부모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얘기입니다. 

영화 주제가인 만큼 '피리불던 모녀고개' 역시 바로 이런 영화의 내용을 애잔하게 노래하면서 딸을 위한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요. 이 노래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면서 담담한 듯 구슬픈 황금심 선배님의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캄캄한 세상바다 너 하나만 의지하고
 가시밭 불고개를 울며울며 넘을적에
 그 누구가 앗아를 갔나 내 품안에 잠든 아기를
 구슬픈 엄마피리 오늘밤도 불어주마

​ 달빛도 무심하지 내 갈곳은 어드메냐
 힘없는 발걸음에 돌아보는 병원들창
 굳세이게 살아가다오 내 품에서 떠나를가도
 네 행복 위하여선 이 목숨도 다 바치리"

이 노래가 더 구슬프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이 곡을 녹음할 당시 여러 모로 힘들어했던 남편 고복수 선배님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이 담겨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 자식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존재하니까 말이예요. 노래로 만나고, 함께 노래하면서 사랑하고, 함께 노래하면서 이별했던 고복수 선배님과 황금심 선배님. 비록 지금 우리 곁에 계시진 않지만, 저 멀리 하늘에서도 다정한 노래를 부르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