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바보같은 사나이 (나훈아.1970)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많은 가수들의 다양한 노래들이 석연찮고 어이없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라는 판정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1987년 8월과 9월에 대대적으로 해금이 될 때까지 방송심의 위원회에서 금지한 노래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는데요. '엘레지의 여왕'이면서 한국 가요계를 빛낸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인 이미자 선배님의 노래가 무려 14곡이나 금지되었고, 남진 선배님은 9곡, 나훈아 선배님도 8곡이나 되었다는 것은 지금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남진 선배님의 '사람나고 돈 났지'라는 노래는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는데요.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났냐?'라고 대놓고 가사에서 말하는 것은 저속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당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느낌만 있어도 불건전하고 저속하다고 판정했던 사회가 1970년대와 80년대였고요. 슬프고 애절한 감정을 담아 노래하면 창법이 '왜색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했던 시절이 바로 그때였지요. 그래서 유신 시대와 5공 시대에서는 노래 속에서 엄마 아빠 생각을 하면서 슬픔에 잠기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도 '금지'되는 일이라고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올 정도였는데요.

나훈아 선배님의 노래 중에서 '바보같은 사나이' 역시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저 '왜색'이라는 말만 했지, 도대체 어떤 점이 왜색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전혀 없었는데요. 가사를 봐도, 멜로디를 봐도, 노래를 들어봐도 여전히 이 노래가 왜 금지곡이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일 뿐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방송금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나훈아 선배님의 초기 작품들 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지금까지도 임영웅, 오찬성과 같은 후배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다시 한 번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잊지 못할 사랑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남자의 구구절절한 심정을 노래하면서 그 당시 청춘남녀의 마음을 울렸던 노래가 바로 '바보같은 사나이'였습니다. 


"사랑이 빗물되어 말없이 흘러내릴 때
 사나이는 울었다네 빗물도 울었다네
 세월가면 잊어질까 세월아 말해다오
 못잊어 못잊어서 가슴만 태우는
 바보같은 사나이

​ 사랑이 빗물되어 서럽게 흘러내릴 때
 사나이는 울었다네 빗물도 울었다네
 세월가면 잊어질까 세월아 말해다오
 그리워 그리워서 가슴만 태우는
 바보같은 사나이"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박성규 선생님은 나훈아 선배님과 같은 오아시스 레코드 소속의 작곡가였는데요. 1969년 여름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남이섬으로 임직원들 야유회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한 여인이 물가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느낌이 좋아서 신인작곡가였던 박성규 선생님은 오선지에 적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리고 자신이 쓴 곡에 '호수의 여인'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소속가수인 나훈아 선배님에게 보여주었는데요.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던 나훈아 선배님은 '해변의 여인'으로 제목을 바꾸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고, 가사와 제목을 수정해서 탄생한 노래가 바로 '해변의 여인'이었습니다.  

'해변의 여인'을 계기로 박성규 선생님은 나훈아 선배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여러 히트곡을 만들었는데요. 1970년 4월 13일 발매된 나훈아의 곡 "나훈아 스테레오 히트앨범 5집"에 수록되어 인기를 얻었던 '바보같은 사나이', 그리고 이후 발표한 '꿈속의 여인' '풋사랑' '애정이 꽃피던 시절'처럼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나훈아 선배님의 목소리가 멋진 합을 이루면서 두 사람이 함게 작업한 노래들은 모두 대중들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곡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바보같은 사나이'는 가사도, 멜로디도, 그리고 노래하는 창법도 화려하거나 현란한 기교를 뽐내지 않습니다. 슬픈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억지로 애쓰지도 않고요.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사랑에 우는 남자의 모습을 담담하게 노래하는데도 그 감정이 절절하게 우리 마음에 다가온다는 것은 이 노래가 가진 진실성의 힘이겠지요.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여전히 사랑하고 즐겨 부르는 이유일 겁니다.

모든 것이 쉽게 사라지고, 쉽게 잊혀지는 요즘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시는 동안만큼은 그 언젠가 가슴 저리게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옛사랑을 떠올리면서 그 순수했던 사랑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