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달구지 (정종숙.1978)

= 노래 이야기 =

지금은 자동차로 가득한 서울이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주요 운송수단 중에 하나는 소나 말이 끄는 달구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서울 사진을 보면 서울역 앞에서도 말이 끄는 달구지에 각종 짐을 잔뜩 싣고서 넓은 신작로를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6.25 전쟁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호구지책으로 소나 말을 동원해서 달구지로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고요. 삼륜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달구지는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달구지'라는 우리말의 어원은 대체로 '달+구지'로 보는데요. 달은 둥글다는 의미이고 구지는 바퀴를 의미해서 '둥근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를 '달구지'라고 불렀고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가에서 말보다는 소를 더 잘 썼기 때문에 소달구지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봄이 되면 달구지에 퇴비를 가득 싣고 논과 밭으로 향했고요. 그 달구지로 밭을 갈고 늦여름과 가을에는 달구지에 추수한 보리와 볏단을 가득 싣고 울퉁불퉁 자갈길 가득한 비포장 길을 덜컹거리며 다니는 모습이 일상적이었지요. 

그래서 정다운 시골길을 노래할 때 '달구지'가 등장하는 노래도 등장했는데요. 1975년에 발표한 임성훈씨의 '시골길'에도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이란 가사가 나오면서 농촌의 정취를 노래했고요. 1978년에는 정종숙씨가 '달구지'라는 노래를 발표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종숙씨는 1973년 듀엣 '원플러스원'으로 처음 데뷔했습니다. 싱어송라이터였던 박헌룡씨와 부드러운 창법의 정종숙씨는 기존의 혼성듀엣이었던 '라나에로스포'나 '버블검' '뚜아에무아'가 맑고 여린 여성보컬을 내세웠던 것과 보컬적인 측면에서 차별화를 꾀했고요. 

다른 혼성듀엣들이 번안가요를 많이 불렀던 것과 달리 직접 박헌룡씨가 작사작곡한 곡들을 노래하고, 점잖고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공감대를 넓혀갔는데요. '당신의 모든 것을'과 '예전엔'과 같은 노래로 인기를 모았지만, 박헌룡씨가 군에 입대하면서 '원플러스원'은 해체되었고, 정종숙씨는 솔로가수로 활동을 이어갑니다.

1975년, '둘이 걸었네'를 발표하면서 솔로데뷔에 성공한 정종숙씨는 이후 '무교동 이야기' '달구지' '새끼 손가락'이 히트하면서 1980년대까지 사랑받았는데요. 그중에서 정종숙씨의 포근하고 정다운 목소리의 매력이 듬뿍 담긴 노래가 바로 '달구지'입니다.
 

"해밝은 길을 삐그덕 삐그덕 달구지가 흔들려 가네
 털거덕 털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주름진 얼굴 무슨 생각 뻐끔 뻐끔 뻐끔 담뱃대 물고
 털거덕 털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이 길을 곧장 가면 꾸불 꾸불 꾸불 고갯길
 그 마을엔 복스러운 며느리 감이 있다던데

 해밝은 길을 삐그덕 삐그덕 달구지가 흔들려 가네
 털거덕 털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주름진 얼굴 첫 손자를 둥개 둥개 둥개 안아 보고파
 털거덕 털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저 고개 넘어서면 졸줄 졸줄 졸졸 냇마을
 이러다간 돌아올땐 어둑 어둑 어둑 저물겠는걸

 해밝은 길을 삐그덕 삐그덕 달구지가 흔들려 가네
 털거덕 털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손석우씨가 작사작곡한 '달구지'는 마치 한편의 수필같은 이야기를 그림처럼 펼쳐내고 있습니다. 울퉁불퉁 시골길에 덜컹거리는 달구지를 타고 가는 농부가 있고요. 농부에겐 아직 장가를 못간 아들이 있나 봅니다. 

달구지 타고 논밭으로 향하면서, 이 길을 곧장 가서 이웃마을에 있다는 괜찮은 며느릿감을 한번 보고올까? 생각해보고요. 얼른 아들 장가보내서 귀여운 손자를 보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좋은 상상도 해보면서 흔들흔들 여유롭게 달구지를 타고 가는 모습이 참 정겨운데요. 

손석우씨가 작곡한 노래는 전주부터 동녘에 해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멜로디로 표현하고요. 가사에서도 '털거덕' '삐그덕' '꼬불 꼬불' '둥개 둥개'같은 표현들이 이렇게 정다울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정종숙씨의 포근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래는 시골에 계신 우리 부모님을 생각나게 해줬고, 정든 고향의 시골길의 흙냄새를 전해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이제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달구지 대신 경운기가 있고 많은 것이 변해버린 고향의 풍경이지만, 그래도 이런 추석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것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언제든 찾아가면 반겨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이고요. 

팍팍한 일상 속에서 모처럼 느끼는 마음의 여유와 넉넉한 인심일 겁니다. 올 추석에도많은 분들이 고향을 찾으실 텐데요. 추억 가득한 고향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푸근한 정을 마음 가득 느끼는 행복한 추석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