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파도 (바니걸스.1972)

= 노래 이야기 =

시원한 여름의 소리 중에 으뜸은 푸른 바다와 황금빛 해변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일 겁니다. 은빛 물결 반짝거리면서 모래 위에 흩어지는 파도소리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데요. 때론 거친 파도가 밀려오고, 때론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도 많이 닮아서일까요? 우리 가요중엔 ’파도‘란 제목의 노래들이 꽤 많습니다. 

배호 선배님의 ’파도‘란 노래도 있고요. 키보이스의 ’파도‘, 이정선 선배님의 ’파도‘, 김민기 선배님의 ’파도‘, 정미조 선배님의 ’파도‘ 등등 정말 많은데요. 그중에서 많은 분들이 사랑하시는 노래가 바로 ’바니걸스‘ 선배님들의 ’파도‘입니다. 

’바니걸스‘는 우리나라 걸 그룹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10분 차이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자매로 어린 시절엔 너무 똑같은 외모와 음색으로 부모님조차 누가 언니고 동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하죠. 

사실, 쌍둥이로 태어나도 자라면서 조금씩 얼굴이나 체형이 달라질 법도 하지만, 고재숙 선배님과 고정숙 선배님은 학창시절과 가수로 활동하는 시절까지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신체 사이즈까지 똑같았고요. 그래서, 무대 의상을 제작할 때도 한 사람만 가봉하면 얼마든지 두 사람이 모두 입을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항상 모든 것이 똑같았고, 단짝이었던 고재숙 고정숙 선배님은 음악적인 재능도 똑같이 뛰어나서 함께 서울 국악예고에 진학했습니다. 1970년, 신중현 선생님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사운드‘에 노래 두 곡을 부르게 되는데, 그 노래가 바로  ’우주여행‘과 ’하필이면 그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1972년 ’바니걸스‘는 김영광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 ’파도‘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하는데요. 뛰어난 음악성과 깜찍하고 귀여운 외모, 발랄한 성격을 가진 ’바니걸스‘는 데뷔하자마자 국민여동생으로 각광받으며 당시 군부대 위문공연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의 여왕으로 등극합니다. 

팀 이름을 ’바니걸스‘라고 지은 것은 고재숙,고정숙 선배님의 눈이 토끼눈처럼 동그랗고 귀여웠기 때문인데요. 재밌는 것은 1974년, 우리나라 정부가 외래어로 된 가수의 이름을 한글로 고치라는 압력을 가하면서 많은 가수들의 이름이 한꺼번에 바뀐 적이 있었는데요. ’블루벨스‘가 ’청종‘으로, ’템페스트‘는 ’폭풍‘, ’ ’어니언스‘는 ’‘양파들’, ‘라나에로스포’는 ‘개구리와 두꺼비’로 바뀌었구요. 역시 ‘바니걸스’도 ‘토끼소녀’로 소개되고 활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대 ‘국민 여동생’이라는 호칭이 어울릴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바니걸스’ 선배님의 인기 요인은 깜찍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밝고 상큼한 성격, 그리고 국악 예고 시절부터 탄탄하게 다져진 음악성에 있는데요. 국악은 물론이고, 트롯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거침없이 소화하는 노래 실력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창법이 모두 ’바니걸스‘ 선배님들의 매력 포인트였고요. 그런 매력을 제일 먼저 널리 알린 노래가 바로 ’파도‘입니다.


" 파도가 밀려가고 갈매기가 울던 날
  나의 사랑은 허무하게 끝이 났어요
  파도에 밀리는 물거품처럼
  잡지도 못하고 흩어진 사랑이
  미련 없이 깨질 때는 그 사람이 미웠어요
  그렇지만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요

  파도에 밀리는 물거품처럼
  잡지도 못하고 흩어진 사랑이
  미련 없이 깨질 때는 그 사람이 미웠어요
  그렇지만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요 "


’파도‘를 작사 작곡한 김영광 선생님은 포항이 고향으로 지금도 포항에선 ’김영광 가요제‘가 열리는데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항상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탄생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수많은 인기 가수들과 작업한 김영광 선생님은 ’바니걸스‘ 선배님과는 ’파도‘라는 노래로 만나 크게 히트한 뒤, 역시 ’바니걸스‘선배님의 대표곡 중에 하나인 ’그 사람 데려다주오‘를 작곡하면서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갔고요, ’바니걸스‘선배님들 역시 ’파도‘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여러 버전의 노래로 선보였습니다. 

그 중 통기타 반주만으로 부른 노래도 있는데, 그 노래는 ’에보니스‘ 선배님들이 기타연주를 담당했고요. ’파도‘는 다른 가수들도 좋아하는 노래로 사랑받으면서 1974년에 ’템페스트‘가 다시 리메이크해서 또 다른 매력으로 인기를 모았죠.

여름을 맞아 많은 분들이 푸른 바다를 보러 떠나실텐데요. 슬픔과 미련과 아쉬움은 파도 속에 띄워보내고, 시원한 파도 소리에 더위를 식히면서 아름다운 여름 바다의 낭만을 즐기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