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타인들 ( 문주란.1966)

= 노래 이야기 =

매혹적인 저음의 가수라고 하면 흔히 남자 가수들을 떠올리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등장한 여자 가수의 대표 주자가 바로 문주란 선배님이었습니다. 1966년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문주란 선배님의 나이는 열여덟살이었는데요. 

여성스럽고 귀여운 소녀의 얼굴과는 전혀 다르게 굵고 깊은 저음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고요. 심지어 당시 가요 프로그램 사회를 보던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이 문주란 선배님을 이렇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나이 어린 가수이면서 나이 많은 사람 목소리를 내는 문주란 양의 노래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때부터 ‘국내 최저음의 여가수’, ‘어른 목소리를 내는 아이’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문주란 선배님만의 개성 있고 독보적인 저음의 목소리는 발표되는 노래마다 각광 받으며 가요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는데요. 

특히, 굵고 낮은 저음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돋보이고, 저음 뿐만 아니라 고운 고음까지 모두 안정되게 소화하는 점이야말로 문주란 선배님의 가장 큰 매력이었고요. 십대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래든 풍부한 감성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출중해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가수로 인정받으며, 1960년대 ‘국민 여동생’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런 문주란 선배님의 인기는 당시에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가를 불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1960년대에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가를 부르는 것이 인기가수의 척도였고요. 

문주란 선배님 역시 데뷔곡인 ‘동숙의 노래’가 영화 ‘최후전선 180리’의 주제가였고, 이어서 발표한 ‘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내 몫까지 살아주’, ‘파란 이별의 글씨’, ‘낙조’ 등등 여러 인기곡들이 모두 드라마와 영화의 주제가였죠.

특히, 그중에서 ‘타인들’은 1966년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는데요.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한 신봉승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박춘석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로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주제가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당시 인기 있었던 라디오 드라마가 영화로 제작되었던 유행에 따라 ‘타인들’ 역시 1967년에 신성일씨와 문희씨가 주연을 맡아 영화화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주제가였던 ‘타인들’은 영화 주제가로 영화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면서 문주란 선배님의 대표곡 중에 하나가 되었죠.


“당신과 나는 남남으로 만났다가
 상처만 남겨놓고 남남으로 돌아섰다
 호수의 백조처럼 내가 가는데
 사랑을 막아 놓고 발길을 묶어 놓고
 진종일 진종일 비가 내린다

 당신과 나는 남남으로 만났다가
 마음만 주고받고 남남으로 돌아섰다
 흐르는 구름처럼 내가 가는데
 발길을 묶이고 사랑은 막혔어도
 백조는 목이 메어 울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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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이 문주란 선배님에게 잊지 못할 노래인 이유는 이 곡으로 처음 박춘석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타인들’로 가수와 작곡가로 첫인연을 맺은 문주란 선배님과 박춘석 선생님은 이후 ‘낙조’, ‘파란 이별의 글씨’, ‘순정’, ‘별이 빛나는 밤의 부르스’, 

그리고 공항 시리즈라고 불리는 ‘공항의 이별’,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 대합실’ 등등을 모두 히트시켰고요. 그야말로 함께 노래를 발표하면 히트하는 환상의 콤비로 각광 받으면서 문주란 선배님은 MBC 10대 가수에 매년 선정되었고요. 패티김, 이미자, 남진 선배님들과 함께 ‘박춘석 사단’이라고 불렸습니다. 

두 사람은 단지 음악 작업만 함께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서로를 깊이 신뢰하며 지냈는데요. 너무 이른 나이에 데뷔한 나머지 중압감에 시달리고 근거 없는 스캔들 때문에 방황했던 문주란 선배님을 다시 바로 잡아준 사람이 박춘석 선생님이었기에 문주란 선배님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가수로 만들어준 분은 ’동숙의 노래‘를 작곡한 백영호 선생님이지만, 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분은 ’박춘석‘ 선생님으로 저에게는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문주란 선배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빛날 수 있도록 멜로디를 작곡하고, 그런 박춘석 선생님의 감성을 누구보다 멋지게 노래한 문주란 선배님이야말로 서로를 밝게 비춰주는 우리 가요사의 아름다운 별들인데요.

떨어지는 낙엽이 속절 없고, 찬 바람 따라 지나간 옛 사랑의 기억이 마음을 파고드는 요즘인데요. 남남으로 만났다 남남으로 돌아서야만 했던 서글픈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타인들‘과 함께 늦가을의 추억과 우리 인생의 소중한 인연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여유를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