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미워하지 않으리 (정원.1966)

= 노래 이야기 =

어떤 분야든 ‘라이벌’은 있기 마련인데요. ‘라이벌’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시내 또는 개천을 의미하는 ‘rivus’에서 비롯됐습니다. 옛날 농경시대에는 물이 중요했고, 그러다보니,  시내나 개천이 누구의 소유인지, 이곳을 통행하는 권리를 둘러싸고 싸우는 사람들이 생겼고요. 이렇게 ‘하나밖에 없는 것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 혹은 ‘같은 분야에서 또는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맞수"의 의미로 발전한 게 바로 지금의 ’라이벌‘입니다. 

’라이벌‘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고요. 지금도 스포츠부터 각 분야에 라이벌들이 존재하고, 직장 내에서도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요.

우리 가요계에도 쟁쟁한 라이벌들이 존재하면서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쳐왔습니다. 이런 라이벌 구도는 팬들 입장에서도 응원하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했고, 가수들 입장에서도 서로에게 더 발전하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지금의 우리 가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른 것은 이런 라이벌 구도 덕분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하는데요.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70년대 남진 선배님과 나훈아 선배님의 구도였고, 1980년대에는 조용필 선배님과 전영록 선배님을 꼽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우리 가요계엔 그야말로 라이벌 구도가 일반적이었는데요.  

강수지씨와 하수빈씨, 그리고 이덕진씨와 신성우씨, 또 신승훈씨와 김건모씨, 잼과 노이즈, 투투와 룰라,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 등등. 정말 수많은 라이벌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 가요계의 전성기를 만들었고요. 지금도 이런 라이벌 구도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960년대 극장쇼의 라이벌이었던 양대산맥이 바로 ’정원‘ 선배님과 ’쟈니 리‘ 선배님이었는데요. ’쟈니 리‘ 선배님은 1959년에 극단 쇼 보트의 단원이 되었고, 1961년부터 미8군에서 활동하면서 탄탄한 노래실력과 화려한 쇼맨쉽을 갖췄고요. 

정원 선배님은 여러 콩쿨 대회에 입상한 실력을 바탕으로 1960년부터 미8군에서 탑싱어로 노래를 하면서 두 사람의 실력과 끼는 장안에 소문이 자자해집니다. 특히, 정원 선배님은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할 만큼 매사에 활동적이었고요. 1962년부터는 미8군 무대가 아닌 일반무대로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그룹사운드의 메인보컬로 활약했는데요. 

특히, 무대 위에서 파격적인 공연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점이 정원 선배님과 쟈니리 선배님의 공통점이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극장쇼 섭외 1순위를 다투는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995년 9월23일 ’KBS 빅쇼‘에서 극장쇼의 전설이자 라이벌이었던 ’정원‘선배님과 ’쟈니 리‘ 선배님의 우정의 라이벌 무대 특집 방송에 함께 출연한 적도 있는데요. ’빅쇼‘에서 1960년대에 청바지와 청자켓을 유행 시켰던 두 선배님이 다시 청바지와 청자켓을 입고 나란히 서서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세월을 거슬러 많은 분들의 추억을 일깨우기에 충분했고요. 

커플룩으로 입고 나온 화려한 의상과 한 사람이 노래하면, 다른 사람이 옆에서 흥겹게 춤을 추며 활기 넘치는 무대 매너를 보고 있노라면  왜 이 두분을 극장쇼의 전설이라고 말했는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극장쇼 최고 스타로 각광받았던 정원 선배님은 ’갈대의 순정‘으로 유명한 작곡가 오민우 선생님을 만나면서 연달아 히트곡을 발표했는데요.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노래 ’허무한 마음‘이 크게 히트하고 이어서 역시 오민우 선생님의 곡으로 사랑받은 노래가 바로 ’미워하지 않으리‘입니다. 


“목숨 걸고 쌓아올린 사나이의 첫사랑
 그라스에 아롱진 그 님의 얼굴
 피보다 진한 사랑 여자는 모르리라
 눈물을 삼키며 미워하지 않으리

 피에 맺힌 애원도 몸부림을 쳐봐도
 한번 가신 그 님이 돌아올소냐
 사나이 붉은 순정 그 님은 모르리라
 입술을 깨물며 미워하지 않으리 ”


1966년에 발표된 ’미워하지 않으리‘는 첫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나이의 순정을 노래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아무리 붙잡아도 떠나버린 사랑을 원망하지 않고, 진심을 몰라주는 그녀를 끝까지 미워하지 않으며 눈물을 삼키는 심정을 노래하는 정원 선배님 특유의 부드러운 창법과 따뜻한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매력적입니다. 

특히, 이 당시에는 풍부한 성량을 강점으로 지르듯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았는데요. 그에 비해 정원 선배님은 감정의 세세함까지 모두 노래에 담아내는 섬세한 창법과 다정한 음색이 독특한 매력으로 어필하면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짓게 만들곤 했습니다. 

정원 선배님은 목소리나 부르는 노래만큼이나 마음도 겸손하고 따뜻한 걸로 유명했고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려한 노래를 들려주셨던 선배님이 갑자기 2015년, 72세를 일기로 타계하시면서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는데요. 선배님의 그리운 음성을 떠올리면서 ’미워하지 않으리‘ 함께 불러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