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향수 (남인수.1938)

= 노래 이야기 =

우리나라 옛 가요의 특징이자 매력은,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의 희로애락을 많이 겪어볼수록 노래의 깊이가 헤아려지고 노래의 맛이 더 살아나고 가사 한 소절 한 소절마다 묻어나는 가수들의 풍부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거죠. 그래서, 그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왜 힘들 때마다 옛 가요들을 흥얼거리셨는지, 술 한잔 드시고나면 왜 입에서 저절로 옛노래들이 흘러나왔는지가 이해되는데요. 

우리나라 옛 노래들은 그냥 흘러가는 유행가가 아니었고, 부르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있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 였습니다. 특히, 1930년대부터 50년대의 노래들은 우리나라가 가장 불행하고 피폐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고요. 그로 인한 가난, 배고픔, 한의 정서가 가슴속 깊이 응어리로 자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들으면서 고된 현실을 달랬는데요. 이때 사랑 받았던 국민 가수들이 바로 남인수, 이난영, 현인 선배님들이었습니다.

특히, 남인수 선배님은 ’가요계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최초로 불려진 주인공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우리 가요계의 전설인데요. 1918년에 태어난 남인수 선배님은 소년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에서 일했고, 학력도 없고 음악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타고난 미성(美聲)에 노래에 대한 센스가 뛰어나서 가수가 될 소질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일곱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년은 ’시에론 레코드사‘를 찾아가게 되고, 박시춘 선생님과 이부풍 선생님이 만든 노래 ’애수의 소야곡‘을 부르게 되는데요. 이 노래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미성의 가수 탄생‘이라는 레코드사의 ’캐치프레이즈‘가 걸릴 만큼 남인수 선배님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발표된 남인수 선배님의 가녀리면서도 구슬픈 노래들은 수많은 설움을 달래주며 사랑받게 되었죠.

특히, 남인수 선배님의 깊은 목소리에 담긴 애절함과 서정적인 감성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요. 인생의 고난과 사랑, 이별의 아픔과 희망 등을 담은 노래들은 위로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으로 사랑 받는 노래 중에 하나가 바로 1938년에 발표한 ’향수‘입니다.

팍팍한 현실과 징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주었던 ’향수‘는 단순한 노래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사랑 받았던 위로의 노래였는데요.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노래한 것 같은 남인수 선배님의 목소리로 뜨거운 눈물을 삼키게 했던 명곡입니다.

“석양은 날 부르고 마음은 달리노라
고향아 어데메뇨 눈물 속에 어리네
세월은 흘러 이맘은 늙어졌노라
그리운 고향님이여 그리운 고향 동무여

바람찬 고개에는 빗발도 험하온데
고달픈 나그네 몸 어느 곳에 멈추랴
떠도는 꿈이 그리워 가고 싶어요
그리운 고향 오빠여 그리운 고향 아우여

황야에 해가 지면 낙조를 베개 삼고
달리는 꿈길 위에 눈물조차 어리네
노래 부르든 그 시절 안 오려느냐
그리운 고향 산이여 그리운 고향 바다여 ”

강해인 선생님이 작사하고, 양상포 선생님이 작곡한 ’향수‘는 최초에 발매될 때 남인수 선배님과 장세정 선배님이 함께 노래했는데요. 노래 중에서 2절을 노래한 장세정 선배님은 이후 남인수 선배님과 함께 조선연예주식회사 산하의 신생악단에 소속되어 만주를 비롯한 중국 내륙 지방과 일본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가지며 함께 공연을 펼쳤습니다. 

보통 일제 강점기 때 인기 있었던 가수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활동이 뜸한 경우가 많았지만, 남인수 선배님은 일제 강점기의 인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 받으며 꾸준하게 명곡들을 발표 했는데요. 남인수 선배님의 노래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면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고, 풍부한 감성으로 언제 들어도 마음 따뜻해지는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꼬집힌 풋사랑‘, ’울며 헤진 부산항‘, ’감격시대‘, ’가거라 삼팔선‘,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비롯해서 무려 천곡이 넘는 노래를 발표한 남인수 선배님은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계속해서 무대에서 노래했고, 1961년 병세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무너진 사랑탑‘을 마지막으로 녹음했는데요. 결국 1962년 6월26일, 44세에 주옥같은 노래들을 우리곁에 남겨두고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동순‘씨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저도 많이 공감했고, 아마 여러분도 공감하실 것같아 끝으로 소개해봅니다. ’가요황제 남인수의 노래가 우리 가슴에 가장 절절하게 사무치도록 다가오는 시간은 우리네 삶이 어딘가에 시달려 심신이 몹시 피로하거나 곤비한 시간입니다. 아니면 고달픈 나그네 길에서 돌아오는 경우라도 잘 어울립니다. 

이러한 저녁 시간, 버스나 기차의 붐비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바로 그때 성능이 시원치 않은 스피커에서 뿌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뒤섞여 들려오는 정겹고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남인수의 노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