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편지--짧은 흐느낌 같은

 

벽 속의 편지--짧은 흐느낌 같은

 

*

어제 네 편지를 받았네

네 편지에 들어 있는 톱밥 같은 빛들을 받았네

바람에 어린 풀들이 끌려가듯이

우수수수 나

끌려가고 있는 저녁에.

 

*

네 글자들 속에서

수군대는 모래바람

주워내고 주워내도

자꾸 일어서는 모래바람.

 

*네 편지를 읽고 또 읽네

짧은 흐느낌 같은 가을 저녁.

 

―강은교(1945~ )

 

가을에, 아름다운 소식만 들려온다면 좋으련만 익어가는 과일 밭의 느닷없는 태풍 소식처럼 아픈 소식이 올 때가 있습니다. 아니 '가을' 자체가 그런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영 듣지 않았으면 하는 소식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행간마다 '모래바람' 수군댑니다. 접어도 자꾸 눈앞에서 일어납니다. 그림자 길어져서 무겁게 '나'를 끌고 가는 듯한 '가을 저녁'입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외면한 장소에서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마다 집 자랑, 음식 자랑이 즐비합니다만 그 건너편에서 아픈 사람 많습니다. 그들도 오랜 망설임 끝에 이러한 '모래바람' 눈 따가운 '가을 편지'를, '겨울'을 예감하는 편지를 누군가에게 썼을 겁니다.

 

아픈 편지를 놓지 않고 '읽고 또 읽'어서 '가을 저녁'을 진정 '가을 저녁'이게끔 하는 이 사람, 진정 맑고 강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