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금지 빙벽 넘고 눈길 달리고.. 여기는 설상가상, 설악 산악구조대

 

 

 

 

•지난 11일 설악산에서 기자가 토왕성폭포로 가는 얼음 언덕을 오르고 있다. 왼손에 잡은 등강기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등강기를 밀어올리며 밧줄을 잡고 산을 올랐다.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이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다. / 속초=주민욱 영상미디어 산악전문기자

 

•빙벽을 내려가기 전 허리와 허벅지에 찬 안전벨트에 밧줄을 고정하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산악전문기자

 

•12일 설악산 토왕성폭포가 얼어 있다. 빙벽은 개방하지 않았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산악전문기자

 

•소방대원들이 헬기로 사고자를 구조하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아무튼, 주말]

 

ㅡ산악구조대 훈련 체험

 

"완료!" 산악구조대 주현우(34) 소방장이 밧줄을 묶으러 먼저 올라간 대원에게 소리쳤다. 메아리처럼 답이 돌아왔다. "대기!" 기다리라는 뜻이다.

 

산에서는 수신호와 구호가 무전기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기자가 올라갈 차례라 밧줄에 등강기(고정된 줄을 타고 오르게 돕는 등반 장비)를 걸고 위에서의 신호만 기다렸다. "완료!" 밧줄을 튼튼히 고정했다는 구호가 위에서 들려오자 주 소방장이 기자의 안전벨트에 연결된 고정 고리를 풀어줬다. 밧줄을 타고 얼음 언덕을 올랐다.

 

손으로는 등강기를 밀고 아이젠으로 얼음을 찍어 한 발 한 발 디뎠다. 산 아래는 봄 날씨처럼 따스한 영상의 기온. 사무실에서 안전벨트와 헬멧 등 겨울용 등산 장비를 배낭 가득 챙긴 두 시간 전까진 빙벽을 탈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설악산을 오를수록 얼음과 눈이 쌓인 겨울 그 자체였다.

 

롱패딩이 무색할 만큼 포근한 겨울이다. 서울에서는 눈 구경도 하기 어려웠다. 설악산이 겨울의 체면을 살렸다. 지난해 마지막 날, 세밑 한파로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9.5도를 기록할 때, 설악산은 영하 19.8도, 체감온도 영하 32도를 찍었다.

 

지난 5일 설악산은 영하 20.4도로 올겨울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지난 11일 '아무튼, 주말'이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의 토왕성폭포 등반 훈련에 동행했다.

 

ㅡ따뜻한 겨울에도 빙벽 타더라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눈을 뜨니 강원도 속초였다. 설악산으로 가는 길은 단풍철과 달리 적막했다. "겨울이 설악산 비수기예요. 이번 겨울은 콜레란지 코로난지 때문에 손님이 더 안 와요."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 기사가 말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2018년 국립공원 방문객은 4382만명. 그중 가장 적은 수가 늦겨울인 2월(223만명), 많은 손님이 방문한 달은 단풍철 10월(591만명)이었다.

 

'출입금지. 이곳은 탐방로가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오전 9시 산악구조대의 2월 첫 번째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긴 탐방객에게 금지된 길입니다. 그런데 많이들 들어오세요. 사고는 계속 발생하는데 구조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사람들이 몰래 다니는 경로의 위험 요소나 지리를 탐색하는 훈련을 합니다."라고 산악구조대 윤보성(46) 소방위가 말했다. 산악구조대는 설악산 사고 다발 지역에서 매달 약 6회 훈련한다.

 

"저기 보세요. 오늘도 빙벽 타는 사람 있네요."

 

산악구조대원이 가리킨 곳에는 설악산 토왕성폭포가 있었다. 폭포의 시작 지점에 가려면 한 시간은 산을 더 올라야 했다. 자세히 보니 하얗게 언 폭포 중턱에서 점처럼 보이는 사람 둘이 움직였다. 설악산에서 가장 큰 폭포다. 총 길이가 320m. 토왕성폭포를 오르려면 국립공원공단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

 

올해는 따뜻한 날씨를 이유로 빙벽을 개방하지 않았다. 저들은 몰래 빙벽에 오르는 것이다. 윤 소방위는 "토왕성폭포 얼음 상태가 부실해서 위험한 시기입니다. 며칠 전에도 등산객이 빙벽 오르다 다쳐서 구조됐습니다"라며 빙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난 8일 오전 11시, 반짝 한파에 겨울만 기다리던 등산객이 토왕성폭포 빙벽을 찾았다. 일행과 함께 빙벽을 오르던 50대 남성이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에 맞았다. 산악구조대는 지상으로, 소방헬기는 상공으로 출동해 그를 구조했다. 소방청은 2019년 산악 구조 건수가 9333건이라고 밝혔다.

 

그중 겨울철(11월~2월) 구조 건수는 2496건(26.7%). 윤 소방위는 "여름부터 가을에 비하면 겨울은 출동이 뜸하다. 설악산은 적설량이 아주 많아 구조하려면 몇 시간씩 눈을 헤치고 가야 한다. 같은 사고라도 구조가 늦어져 저체온증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ㅡ대충이 통하지 않는 설상가상

 

설악산에서 대충이란 없다. 빙벽을 오르다 아이젠 앞 코가 틀어져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그 순간 생각했다. '죽겠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거지?'

 

태어나 처음 신어 본 아이젠을 제대로 끼우지 않고 밧줄을 잡은 것이다. 주 소방장이 평지에 올라 기자의 아이젠을 점검했다. "대충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군식구의 장비를 고치느라 구조대 훈련이 지체된다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산에서는 대충하면 안 돼요. 떨어져요. 아이젠 착용한 상태로 밧줄 밟지 않게 조심하세요. 끊어질 수도 있어요." 빙벽을 찍어 오르는 아이스바일로 아이젠을 조이며 그가 말했다.

 

훈련 경로는 국립공원 트레킹 코스가 아니었다. 길이 길이라고 할 수 없는 탓에 얼음 계곡과 가파른 바위를 타고 넘어야 했다. 하늘이 맑은 낮에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거운데 설악산의 밤은 어떨까. 주 소방장은 "밤이나 낮이나 출동이 위험하기는 비슷합니다. 밤이라도 사고 위치가 탐방로 주변이면 금방 구조하지만, 이렇게 탐방로가 아닌 길은 훨씬 위험하죠. 오늘 같은 훈련을 통해 익숙해져야 합니다"라고 했다.

 

돌과 얼음을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기어다니려니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실제 구조할 때는 이 산길을 뛰어오른다고 했다.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가 발대한 2013년 이전부터 8년간 산악 구조를 한 주 소방장에게 가장 힘든 점을 물었다. 주 소방장은 "허리가 아파요. 무릎도 아프고요"라며 웃었다. 산악구조대는 소방에서도 '빡센' 업무 강도로 악명 높다. 부상자를 업고 험한 산세를 오르내리는 탓에 허리와 무릎 통증을 달고 산다고 한다.

 

ㅡ등산 준비물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등반 시간이 다섯 시간에 가까워지며 집중력과 다리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일행에서 뒤처져도 앞선 대원이 만들어 놓은 길을 놓쳐 건널 수 없는 바위나 얼음 위에서 당혹스러움을 맛봐야 했다. 설악산 절경을 눈에 담을 새 없이 다람쥐처럼 날아다니는 대원들의 발자국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설상가상, 눈이 녹기 시작해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고 녹은 눈에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눈길에서는 아이젠을 착용하다가 눈이 녹은 바위를 오를 때는 아이젠을 벗어야 했다. 계곡을 건널 때는 폴로 얼음을 두드려 살얼음인지를 확인했다. 대원들은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면 금방 동상에 걸릴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산 탈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어, 이거 빼도 될까' 싶은 장비까지 챙기세요." 주 소방장이 산에 올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일러줬다. 길들이지 않은 남의 등산화를 빌려 신고, 20L짜리 작은 배낭에 물과 초콜릿 정도만 챙겨 산에 오르려던 기자도 뜨끔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단풍 구경을 하던 설악산을 생각해 산을 얕본 탓이다.

 

산악구조대원들은 출근하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등반·구조 장비를 담아 몸의 반만한 배낭을 싸놓는다. 구조 요청이 오면 냉장고 안에 가득 쌓인 파워에이드 한 병을 챙겨 넣고 산으로 간다. "겨울에 등반할 때는 아이젠과 랜턴을 챙기세요. 따뜻한 겨울이라고 하지만 갑자기 눈이 올 수도 있거든요. 혼자 산에 오지 마세요. 지인들에게 설악산의 어디까지 갈 거다 말해놓으세요. 휴대전화 신호가 안 터지는 데도 많습니다."

걱정하며 설악산까지 왔는데 산악구조대원의 근심은 더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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