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백마야 울지마라 (명국환.1954)

= 노래 이야기 =

얼마 전 KBS '아침마당'에서 아주 특별한 방송이 전파를 탔는데요. "나이는 숫자일 뿐! 나는 현역 가수다"라는 제목의 특집으로, 50년 이상 연예계 생활을 한 원로 가수 선배님들이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귀한 자리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방송에는 가수생활 66년을 맞은 박재란 선배님부터 쟈니리 선배님, 남일해 선배님, 방주연 선배님, 김미성 선배님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는데요. 오래 전 활동할 때의 숨은 에피소드부터 활기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에게도, 팬분들에게도 참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원로가수'는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해서 그 방면에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반백년 넘는 세월 동안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노래가 좋아서 가요계를 지켜온 원로가수 선배님들이 정말 존경스럽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늘 건강관리를 잘하시면서 오래오래 좋은 노래를 들려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특히, 최근에 원로가수 중에 원로가수라고 할 수 있는 '명국환' 선배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후배들과 가요팬들이 많은데요. 항상 멋진 모자를 쓰고서 무대에서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명국환 선배님은 세월과 나이를 잊게 만드는 명품 목소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명국환 선배님은 1927년 1월 9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는데요. 어릴 때부터 워낙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연안극장에서 주최한 콩쿠르 대회에서 남인수 선배님의 '남아일생'을 불러서 상을 탄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고향을 떠나 피난을 내려온 다음, 해병특공대에 입대해서 전쟁 동안 수많은 무공을 세웠고요.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음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선발대회에 나갔고,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1등을 차지하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명국환 선배님의 목소리는 깔끔하고, 자연스러워서 듣는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전통가요의 특징인 꺾기를 할 때에도, 그것이 유난스럽거나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명국환 선배님의 노래를 좋아했고 즐겨 불렀는데요. 이런 명국환 선배님과 콤비를 이뤄서 멋진 노래를 작곡한 주인공이 바로 작곡가 '전오승'선생님이었습니다. 휴전 직후인 1954년 가수선발대회에 입상한 후, 샛별악극단에 입단해 활동하다가 나애심 선배님을 알게된 명국환 선배님은 나애심 선배님의 오빠였던 작곡가 '전오승'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요. 함께 여러 곡을 작업했는데, 그 첫 번째 노래가 바로 1954년 명국환 선배님의 데뷔곡인 '백마야 울지마라'입니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거치른 타관길에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또 다시 고향생각 엉키는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 고향을 등에 두고 흘러가기는
 네 신세 내 신세가 다를게 없다
 끝없는 지평선을 고향이거니
 인생을 새 희망에 바라며살자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강영숙 선생님이 작사하고, 전오승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로, 이 노래의 가사는 굉장히 은유적이고 시적인데요. 노래에 나오는 '백마'는 백의 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을 비유했고요. 백마는 고향으로 가자고 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곡이 바로 '백마야 울지마라'였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에게는 위로가 되었고, 전쟁 후 가진 것 없이 피폐한 삶을 살아야했던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힘을 전해주는 희망가로 사랑받았지요. 

'백마야 울지마라'가 히트하면서 명국환 선배님의 전성기가 시작됐고요. 이후, 전오승 선생님과 함께 신신레코드사로 스카우트돼서 '방랑 시인 김삿갓' '아리조나 카우보이' '공주의 비련' '백제왕의 최후'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등의 노래를 함께 작업해서 히트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명국환 선배님은 위로의 노래부터 희망의 노래까지 다양하게 부르면서 1950년대 명실상부 최고의 가수로 각광받았고, 오랜 세월 동안 가요계의 원로로서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지요. 

몇 년 전, 가요무대에 명국환 선배님이 지팡이를 짚고 나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가볍게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치면서 박자를 맞추며 노래하는 선배님의 목소리는 젊은 시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이 만들어준 연륜과 품격이 더해져서 깊은 울림을 주는 목소리였고요. 그렇게 노래하는 명국환 선배님의 모습은 정말 근사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올해로 96세가 되신 명국환 선배님이 멋지게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하루빨리 다시 만나길 바라면서 69년전 발표된 선배님의 데뷔곡 '백마야 울지마라'를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