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등대지기 (오기택.1964)

= 노래 이야기 =

'등대지기'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던 동요 '등대지기'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 거예요.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처음부터 동요가 아니었고, 1972년에 가수 은희 선배님이 발표한 가요였습니다. 

외국의 민요에 가사도 일본의 작사가가 붙인 노랫말을 번역했기 때문에 '작자 미상'이라고 표기돼있지만, 워낙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적인 가사로 아이들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사랑받았는데요. 

은희 선배님이 노래한 '등대지기' 이전에도 우리 가요엔 두 곡의 '등대지기'란 곡이 있었습니다. 먼저 맨 처음 발표된 노래는 1964년 오기택 선배님이 발표한 '등대지기'로 강남풍 선생님이 작사하고, 김부해 선생님이 작곡했고요. 두 번째는 1966년에 '봉봉 사중창단'이 발표한 '등대지기'로, 이 곡은 '봉봉 사중창단'의 멤버였던 지웅 선배님이 작사하고, 김성진 선배님이 작곡하면서 1967년 'KBS1 TV 고운 노래 대상'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오기택 선배님의 '등대지기'와 봉봉 사중창단의 '등대지기'는 가사도 다르고 멜로디도 다르지만, 두 곡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등대지기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노래했다는 사실입니다. 봉봉 사중창단의 '등대지기'에서는 홀로 등대를 지키면서 고독과 싸우며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했고요. 

오기택 선배님의 '등대지기'는 20년 등대지기 생활을 하면서 오는 사람도 없고, 보고 싶은 님도 없지만, 고향 하늘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데요.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며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며 외부와 차단된 채 일해야 했던 '등대지기'에게는 고독과 그리움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숙명이었을 겁니다.

문학작품이나 우리 가요에서도 '등대'는 고유의 정서를 지닌 대상물로 자주 등장했는데요. 등대가 맨 처음 테마로 등장한 노래는 1934년 이난영 선배님의 '추억의 등대'였고요. 이후, 채규엽 선배님의 '눈물 어린 등대', 남인수 선배님의 '포구의 인사', 그리고 해방 이후엔 손인호 선배님의 '청춘 등대', 이청봉 선배님의 '등대수 일기', 최무룡 선배님의 '등대불', 김부자 선배님의 '등대섬 처녀'와 같은 곡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등대지기'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외로움 속에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오기택 선배님의 '등대지기'는 구성진 가락과 서정적인 가사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물새들이 울부짖는 고독한 섬 안에서 
 갈매기를 벗을 삼는 외로운 내 신세여라 
 찾아오는 사람 없고 보고싶은 님도 없는데 
 깜빡이는 등대불만이 내 마음을 울려줄때면 
 등대지기 이십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파도가 넘나드는 고독한 섬 안에서 
 등대만을 벗을 삼고 내 마음 달래어 보네
 이별하던 부모형제 그리워서 그리워져서
 고향하늘 바라다보며 지난 시절 더듬어보니
 등대지기 이십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오기택 선배님은 1939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는데요.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중학교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홀로 남겨진 오기택 선배님은 서울에 살던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올라왔고, 성동공업 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게 되었는데요. 

어쩌면 어린 나이 때부터 외로움을 알게 된 오기택 선배님이었기에 노래를 친구 삼아 가수의 길을 선택했고, '등대지기'란 노래 역시 소절마다 오기택 선배님의 깊은 감성이 더 짙게 묻어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기택 선배님은 목소리 자체에 이미 다양하고 중후한 감정이 배어 있고 성량이 풍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음이 마법사'라고 불렀는데요. 오기택 선배님이 멋진 저음으로 노래한 '고향무정'과 '충청도 아줌마' 등 수많은 히트곡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요. 

그뿐 아니라 오기택 선배님은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면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나서주었는데요. 외로움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감싸줄 수 있었던 오기택 선배님이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외로움을 벗 삼아 노래했던 오기택 선배님이 세상을 떠난 때가 작년 3월인데요. 포근하고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줬던 선배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함께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