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삼일로 (여운.1968)

= 노래 이야기 =

가수에게 첫 노래는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첫사랑에 성공할 확률이 적은 것처럼 가수들도 처음 부른 노래가 크게 히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요. 그런데 신인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작사가가 만들어준 노래를 만난 행운의 주인공이 바로 '여운' 선배님이었습니다. 

대구가 고향인 여운 선배님은 대구 대륜고등학교의 야구선수였는데요.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에 능한 만능선수로 운동으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에 훤칠한 키, 준수한 외모로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게다가 운동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러서 친구들 사이에서 가수가 돼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요. 계속 야구를 할 것이냐, 아니면 가수가 될 것이냐, 운동과 노래 사이에서 갈등하던 여운 선배님은 졸업과 동시에 서울의 전오승 음악 학원을 찾아갔고, 야구 대신 노래를 선택하게 됩니다.  

전오승 음악 학원에 다니면서 재능을 인정받은 여운 선배님은 당대 최고의 작사가, 작곡가를 만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는데요. 전오승 선생님의 곡에 정두수 선생님, 월견초 선생님이 가사를 쓴 곡을 만난 거지요. 그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여운 선배님의 '과거는 흘러갔다'인데요. 

고등학교 시절 음악감상실에서 만난 여대생을 짝사랑했던 여운 선배님의 추억을 정두수 선생님이 가사로 옮긴 이 노래는 미성에 가창력을 갖춘 '여운'이라는 미남 청년을 대중들에게 알렸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사랑하고 애창하는 명곡인데요. 1968년 노래를 발표했을 때, '과거는 흘러갔다'보다 더 많은 인기를 모았던 곡은 여운 선배님의 '삼일로'였습니다. 

'삼일로'는 퇴계로 남산 입구에서 중앙극장 앞을 지나서 종로 탑골공원 낙원상가까지의 길을 말하는데요. 탑골공원에서 있었던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한남동에서 남산터널을 지나 안국역까지의 거리를 삼일대로라고 부릅니다. 

삼일로라는 명칭은 1966년에 붙여졌는데요. 2년 후, 삼일로의 이름에 걸맞게 삼일로 중앙에 31층의 빌딩을 세웠고, 당시 초고층 빌딩이었던 이 건물이 바로 삼일빌딩입니다. 간혹 삼일빌딩이 있는 길이어서 '삼일로'라고 착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실제로는 3.1운동을 기리는 삼일로가 생기고 난 후, 삼일빌딩이 세워진 거지요. 

삼일빌딩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당시 서울의 랜드마크였고요. 63빌딩이 처음 지어졌을 때 서울에 오면 꼭 구경하러 들렀고, 요즘엔 잠실의 롯데타워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것처럼 1970년대엔 삼일빌딩을 보기 위해서 시골에서 상경하는 분들도 참 많았다고 해요. 

게다가 그 시절 서울의 메카는 단연 명동이어서 음악다방과 백화점, 극장이 포진해있었고, 젊은이들은 명동의 음악다방이나 학사주점에서 초저녁 밤 시간을 보내다가 삼일로 고갯길을 걸어서 종로에서 무교동까지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는데요. 그래서 삼일로 고갯길은 당시 청춘 남녀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했고, 그 삼일로를 함께 걸었던 연인과의 아련한 추억을 노래 한 곡이 여운 선배님의 '삼일로'입니다. 


"삼일로 고갯길을 같이 가던 그날 밤
 영원토록 이 거리를 잊지 말자고
 거니는 발자욱에 새긴 그 사랑
 날이 새면 지워질까 삼일로 고갯길

​ 삼일로 가로등을 새며 가던 그날 밤
 영원토록 그 등불을 잊지 말자고
 거니는 순간에는 즐거웠지만
 내일이면 추억 남길 삼일로 고갯길"


월견초 선생님이 작사하고 전오승 선생님이 작곡한 '삼일로'는 여운 선배님의 낭랑하면서도 유려한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여운 선배님은 색다른 미성으로 1970년대 초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이후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지 않고 자취를 감춰서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는데요. 그래도 노래는 오랫동안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아름다운 옛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움이 점점 짙어지는 계절인데요. 이 시간, 오래전 차가운 바람 불어올 때 옷깃을 여며주며 다정하게 손잡고 명동을 거닐었던 사람, 삼일로 고개를 함께 넘었던 그리운 청춘을 다시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