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못 잊을 건 정 (정원.1977)

= 노래 이야기 = 

우리나라에 ’극장‘이라는 실내 공간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였습니다.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공연이 주로 야외에서 펼쳐지는 게 대부분이었는데요. 남사당패의 줄타기나 마당놀이같은 공연은 주로 저잣거리에서 펼쳐진 데 비해서, 일본은 가부키나 분라쿠같은 공연이 실내 극장에서 펼쳐졌고요. 그러다보니, 일제강점기 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여러 도시에 실내 극장들이 처음 만들어집니다. 

1920년대 무성영화가 유행할 때는 관객과 대면하며 영화의 흥행을 주도했던 변사들의 목소리가 극장에 울려퍼졌고요. 단성사와 조선극장 등에서는 악단이 극장에서 직접 영화 음악을 연주했고, 영화 중간에 쉬는 시간엔 ’막간 가수‘들이 등장해서 주제가를 직접 노래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그렇게 무성영화의 시대가 지나고,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부터 극장은 악단과 가수와 변사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다, 또다시 ’극장‘이 ’공연‘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 바로 1960년대부터인데요.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1960년대에는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인기 가수들의 노래가 줄줄이 히트하고, 또 전설적인 만담가들이 인기를 모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영상시대가 개막했지만 TV 수상기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서조차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요. 

그러다보니, 스타들을 직접 가까이서 만나고 싶은 대중들의 열망이 솟구치면서 극장에서는 영화상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타들의 공연이 열렸는데요. 극장의 스크린 앞에는 널찍한 무대가 있었고, 그 무대에서는 인기 가수와 영화배우, 또 코미디언과 섹시한 무용수들의 춤까지 만날 수 있는 버라이어티쇼가 펼쳐졌습니다. 

홀쭉이와 뚱뚱이로 유명했던 양훈 양석천 선배님의 만담쇼! 인기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곽규석,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선배님의 요절복통 코미디쇼뿐만 아니라, 1963년 무랑루즈 쇼단이 기획한 ‘신성일 엄앵란쇼’와 ‘신성일 윤정희 쇼’는 당대 최고의 극장 쇼였고요. 

남진, 나훈아, 이미자, 하춘화 선배님처럼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들이 출연하는 날은 마을 전체가 들썩거리는 축제날이었는데요. 이렇게 ‘극장쇼’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1960년대에 극장쇼의 진정한 슈퍼스타 3인방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정원, 쟈니 리, 트위스트 김’ 선배님이었습니다. 

다른 인기가수들도 많았지만, ‘정원, 쟈니 리, 트위스트 김’ 선배님은 무대에서 파격적인 공연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사로잡는 에너지가 엄청났는데요. 세 사람 모두 청바지에 청재킷을 즐겨입으면서 당시 사람들은 세 사람을 ‘양아치 클럽’으로 불렀고요. 그야말로 극장 쇼 무대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죠. 

특히, 그중에서 ‘정원’ 선배님은 TV방송에는 출연하지 않고, 극장 쇼 무대와 앨범으로만 각종 신문, 잡지와 전국의 방송국에서 50여 개의 가요상을 수상했는데요. 정원 선배님이 맨처음 무명가수로 당대 최고가수였던 이미자 선배님의 극장쇼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 정원 선배님은 강한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얼굴에 검은색 칠을 하고, 와이셔츠를 밖으로 빼서 묶는 특이한 모습으로 무대에 나갔고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하운드 독’을 멋지게 노래하자, 객석에선 앙코르가 터져 나왔고, 신이 난 정원 선배님은 객석과 무대를 오르내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아예 무대에 드러눕는 파격적인 스테이지 매너로 열창하면서 무려 4차례의 앙코르를 받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공연을 계기로 정원 선배님은 단숨에 극장쇼의 슈퍼스타로 등극하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극장쇼에서 멋지게 노래하며 언제나 기대 이상의 공연을 펼쳤던 정원 선배님은 당대 최고였던 '남진', '나훈아', '신성일' 선배님의 인기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구요. ‘허무한 마음’에 이어서 ‘미워하지 않으리’가 히트하고, 잠시 공백기를 가진 뒤, 오랜만에 또 한번 사랑받은 노래가 바로
‘못잊을건 정’입니다.


“당신을 보내 놓고 무거운 발길은
 돌아갈 길을 잊어버렸나 안개 속을 걷는다
 마음이 아파와도 잊어야 할까요
 돌아올 수 없을까 돌아올 수 없을까
 못 잊을 것은 정 ~

 당신을 보내 놓고 무거운 발길을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나 안개 속을 걷는다
 그 모습 그리워도 지워야 할까요
 돌아올 수 없을까 돌아올 수 없을까 
 못 잊을 것은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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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잊을건 정’은 정원 선배님이 오랜만에 재기에 성공한 곡입니다. 1960년대 승승장구하며 발표하는 노래마다 인기를 모았던 정원 선배님이었지만, 1968년에 ‘무작정 걷고 싶어’와 함께 발표한 ‘내 청춘’이라는 노래가 흐느끼는 듯한 창법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요. 1971년에 동양방송(TBC)과의 불화를 겪으면서 방송출연 정지가 되면서 방송계에 환멸을 느낀 정원 선배님은 활동을 중단하며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인 1977년, 김정일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못잊을건 정’을 발표하면서 오랜만에 팬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며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가슴 아픈 이별 후에 가슴에 남아있는 사랑의 안타까움 때문에 안개 자욱한 거리를 헤매는 남자의 심정을 정원 선배님만의 애절한 감정으로 노래하면서 이 곡은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부르는 명곡이 되었습니다. 

직관적인 것을 선호하는 서양에서는 동양사람들의 ‘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가 별로 없다고 하죠. 그만큼 은근하고 은은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정’인데요. 남은 날들 동안 미운 정부터 고운 정까지 수많은 곡절이 쌓여서 만들어진 우리들의 깊은 정이 안타깝게 끊어지지 않기를, 마음 아프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