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4월이 가면 (패티김.1966)

= 노래 이야기 =

우리 가요사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정말 많은 가수는 패티김 선배님일 겁니다. 1960년 한·일 문화교류를 위해서 일본정부로부터 공식 초청된 최초의 한국가수, 최초로 개인의 이름을 걸고 리사이틀 공연을 펼쳤던 가수, 개인가수로는 최초로 미국에 진출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인 ‘살짜기 옵서예’의 주연을 맡았고요.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 공연을 했고, 미국 카네기홀에서도 우리나라 대중가수 최초로 공연을 하는 등.. 정말 패티김 선배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가요의 새 역사가 되었습니다.

패티김 선배님은 어린 시절 ‘판소리’를 공부했구요. 1956년, ‘김혜자’라는 본명으로 국무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3년 후인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데뷔합니다. 

이 시기에 미국가수 ‘패티 페이지’를 오마주해서 ‘패티 김’이라는 예명을 지었는데요. 1959년은 우리나라 가요계의 빛나는 디바 두 사람이 동시에 데뷔한 해이기도 해요. 한 사람은 엘레지의 여왕으로 제2의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 이미자 선배님이고요. 또 한 사람은 스탠더드 팝의 여왕인 패티김 선배님이지요. 

미8군 무대를 통해 데뷔한 패티김 선배님은 데뷔하자마자, 글로벌한 행보를 선보였는데요. 일본 음악계의 거물인 재일교포 와타나베 히로시의 초청을 받아서 일본에서 보컬리스트로 명성을 높였고, 미국으로 진출해서 라스베거스의 뮤지컬 무대에도 섰고. NBC의 ‘투나잇쇼’에서 ‘Summer Time’을 부르기도 했죠.  

그러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우리나라에 귀국한 패티김 선배님은 1966년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주연을 맡아 노래했는데요. 패티김 선배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1967년 동양방송에서는 ‘패티김쇼’라는 고정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이 방송의 정규 멤버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색소폰 연주자이면서 작곡가였던 길옥윤 선생님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1965년에 귀국한 길옥윤 선배님과 같은 해에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잠시 귀국한 패티김 선배님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적이었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함께 공연을 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성에 매료되었고, 남몰래 연정을 가슴깊이 품게 됩니다. 

하지만, 잠시 귀국했던 패티김 선배님은 4월이면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고요. 그 소식을 전해들은 길옥윤 선배님은 4월이 오기 전의 어느날!! 패티김 선배님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를 들려주는데요. 그 노래가 바로 ‘사월이 가면’입니다. 


‘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잠이 들 면은 꿈 속의 사랑
  사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  날이 갈수록 깊이 정들고 
  헤어지면은 애절도 해라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사월이 가면 떠나야 할 그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


샹송가수 ‘앙리코 마시아스’의 곡에 길옥윤 선생님이 직접 가사를 써서 전화로 불러준 노래 속엔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 담겨 있었고요. 그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깊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비자 문제가 꼬이면서 패티김 선배님은 출국을 포기하게 되고요. 

그해 6월. 두 사람은 약혼을 하고, 12월 10일에 워커힐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죠. 결혼식에서 패티김 선배님과 길옥윤 선생님은 축하하러 찾아와준 하객들에게 결혼선물로 7인치 싱글음반을 기념품으로 건넸는데요. 시판용이 아니라 비매품으로 500장 한정판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가 바로 두 사람을 맺어준 노래 ‘사월이 가면’이었습니다. 

결혼 후, 패티김 선배님과 길옥윤 선생님이 함께 호흡을 맞춰서 발표한 노래들은 그야말로 지금도 가요계의 명곡으로 사랑 받고 있는데요. ‘사월이 가면’으로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던 두 사람은 1973년 ‘이별’이란 곡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음악적 동반자로 언제나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20년 후, 길옥윤 선생님이 암투병 중일 때 특별편성으로 방송된 ‘패티김 길옥윤 이별 콘서트’에서 패티김 선배님은 두 사람이 사랑이 맺어졌던 ‘사월이 가면’과 헤어질 때의 사연 담긴 ‘이별’을 노래하면서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었지요.

몇 년 전, 패티김 선배님은 한 방송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이혼하면서 길 선생한테 부탁한 게 있다. 우리가 작곡가와 가수로서는 정말 훌륭한 커플이지만, 부부로서는 성공을 못 했다. 우리는 '이혼을 하더라도 길 선생은 좋은 곡을 써서 주고, 나는 열심히 노래 불러서 길 선생을 유명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이혼 후, 2년 뒤에 받은 곡이 ‘사랑은 영원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을 지켰다. 멋지죠?“ 

음악 속에서 사랑하고, 음악 속에서 이별하고, 이별 후에도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으로 아름다운 음악적 동반자로 남았던 패티김 선배님과 길옥윤 선생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사월이 가면’ 노래 속에 담긴 진실한 사랑과 설렘을 오랜만에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