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다방의 푸른 꿈 (이난영.1939)

= 노래 이야기 =

2017년 1월 26일, 러닝타임 70분의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이 개봉했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다방의 푸른 꿈'인데요. 이 작품은 바로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국민가수 '이난영' 선배님과 1930년대에 오케레코드에서 데뷔해서 천재 작곡가로 칭송받았던 '김해송' 선생님, 그리고 이난영 선배님과 김해송 선생님이 결혼해서 낳은 두 딸 '숙자, 애자', 그리고 이난영 선배님의 오빠였던 이봉룡 선생님의 딸 '민자'가 만들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김시스터즈'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난영 선배님의 엄격한 지도하에 미 8군과 극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김시스터즈'가 1959년에 미국에 진출하고 아시아 최초로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하면서, 어떻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낯선 미국 대중들에게 어필했는지, 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지만 영어 노래를 유창하게 불렀던 수줍은 세 명의 소녀를 만날 수 있는 음악 다큐멘터리가 바로 '다방의 푸른 꿈'인데요. 

영화 제목으로 사용된 '다방의 푸른 꿈'은 1939년에 이난영 선배님이 발표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블루스 곡 제목이고요. 이 노래는 훗날 '김시스터즈'가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해서 다시 발표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인 김해송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다방의 푸른 꿈'이라는 노래는 부모님과 '김시스터즈'를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곡이고요. 그래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다큐멘터리 제목은 없었을 거예요.

1916년 목포에서 태어난 이난영 선배님은 극단 "태양극장"에 입단하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요. 1933년에는 태평레코드에서 "시드는 청춘"을, 오케레코드에서는 "향수"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했는데요.

1935년에 일제 강점기 최고의 인기곡이자 한국 가요사의 불후의 명곡으로도 불리는 노래지요,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의 '목포의 눈물'을 발표하면서 시대의 '가왕(歌王)'이라고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음이 섞인 경쾌한 창법으로 트로트와 신민요를 비롯해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던 이난영 선배님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1936년에는 일본에서도 음반을 발표할 정도였고요. 그러다 1937년에 가수 겸 작곡가였던 김해송 선생님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며 음악적 동반자가 되었지요.

결혼 이후, 이난영 선배님은 음악의 천재라고 불렸던 김해송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면서 전성기를 보냈는데요. 이 시기에 발표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노래가 바로 '다방의 푸른 꿈'입니다. 

평소에는 단아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트로트를 노래했던 이난영 선배님이었지만, 블루스 계열인 '다방의 푸른 꿈'을 노래할 때는 몸에 달라붙는 몸에 달라붙는 비로도 드레스를 입고 담배를 물고 요염하게 노래했다고 전해지는데요.

무대의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 당시 '짜-즈'라고 불렸던 변화무쌍하고 세련된 음조를 노래하는 이난영 선배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기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흘러간 꿈은 찾을 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추억이 풀린다

  조우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던 그날 밤
  목메어 부른다 그리운 그 밤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서리에 시든 장미화러냐
  시들은 사랑 쓰러진 그 밤
  그대는 가고 나혼자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조우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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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의 푸른 꿈'은 지금 들어도 세련된 멜로디가 놀라운데요. 블루스 풍의 퇴폐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재즈곡입니다. 그 당시에는 탱고풍, 블루스풍, 라틴풍 할 것 없이 통틀어 '쨔_스'곡이라고 불렸는데요. 이 시기에 노래의 주제로 많이 쓰였던 것이 바로 '다방'이었어요. 

지금이야 커피를 물 마시듯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1930년대엔 '다방'의 '커피'라는 것이 왠지 모를 세련된 분위기를 대변했고요. 그래서 그 당시 여러 문인들과 예술가, 경성의 모던보이, 모던 걸들이 모여 문화적 교류를 나누는 곳이 바로 '다방'이었지요. 

'다방의 푸른 꿈'은 그런 다방을 모티브로 해서 세련된 멜로디와 가사로 사랑받았고요. '김시스터즈'뿐만 아니라, 이미자 선배님도 이 노래를 다시 발표한 적이 있고,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에서도 시끌벅적한 술집의 배경음악으로 '다방의 푸른 꿈'이 들려와 반가움을 전해줍니다. 

음악평론가이자 작곡가였던 황문평 선생님은 이런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일제 말엽 부민관 무대에서 이난영은 검은 터번 머리에 담배를 피워 물고 약간 코에 걸린 목소리로 아주 애수에 잠긴 노래를 불렀다. 곡목은 '다방의 푸른 꿈' (중략) 이 노래는 이난영의 진짜 히트 넘버였다."

세월이 지날수록 빛이 나는 노래들이 있는데요. '다방의 푸른 꿈' 역시 바로 그런 곡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난영 선배님의 '다방의 푸른 꿈'을 감상하시면서 기회가 될 때 앞서 소개해 드린 다큐멘터리 영화 '다방의 푸른 꿈'도 찾아보신다면, 아마도 이난영 선배님과 김해송 선생님, 그리고 '김 시스터즈'를  다시 조우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